(예레미아 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남왕국 유다가 말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국력은 약화되었고
당시, 최대 강국이었던 바벨론은 4차례에 걸쳐 남왕국 유다에 침입하여
유다 사람들을 인질처럼 여러 번 포로로 끌고 갔습니다.
전국에서 우수한 인재들, 기능공들을 대거 차출한 셈이었지요.
바벨론의 포로 가운데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할 때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며 경건하게 살고자 한 사람들도 더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에스겔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낯선 땅인 바벨론으로 포로로, 인질로 끌려와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어느 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선지자 예레미아로부터 서신 하나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유다 왕실의 사신으로서
바벨론을 순방하게 된 엘라사라는 고관을 통해서 포로들에게 전해진 서신이었습니다.
서신의 내용이 예레미아 2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편지의 서두가 시작됩니다.
(렘 29:4)
-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편지를 전하기는 예레미아가 했지만, 편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너희가 바벨론으로 가게 되었다.
바벨론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바벨론에서 살 계획을 세워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렘 29:10)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편지를 읽은 포로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포로들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심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의 나이로 보아 칠십 년을 바벨론에서 산다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기막힌 사실입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은 이러한 편지를 보내셨을까요?
(렘 29:11)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포로 된 현실에 놓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을 왜 하시는지가 중요합니다.
단 하나! 포로로 잡혀온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민족의 죄를 짊어지고 노예생활을 해야 하는 유다 백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희망입니다.
절망의 유혹을 뿌리치는 것입니다.
만약 유다 백성에게 희망의 불꽃이 보이지 않았다면 한 달도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희망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희망을 전하신 것입니다.
장래가 불확실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느냐, 주지 않느냐의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낳습니다.
잭 캔필드의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
친구 사이인 암 전문의 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나는 도대체 자네를 이해할 수가 없네.
우리 둘 다 전이성 암환자에게
똑같은 약을, 똑같은 양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용도로 처방을 하는데
왜 나는 22%밖에 성공을 못하고, 자네는 74%의 성공을 이룰 수 있는가?
전이성 암을 치료하면서 자네와 같은 치료 확률은 들어본 일이 없거든.
자네에겐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자네나 나나 똑같은 약을 처방하고 있지.
전이성 암에 투여하는
( Etoposide ) 에토포사이드,
( Platinum ) 플라티늄,
( Oncovin )옹코빈,
( Hydroxyurea ) 하이드록시유리아
이들 네 가지 약이 아닌가?
자네는 이 약을 환자에게 줄 때, 전에도 먹은 EPOH(에포)입니다. 말하며 건넸을 거야.
통계적으로도 회복될 가능성이 낮은 환자이지만, 나는 약 이름의 순서를 역으로 바꿔 준다네.
(약 이름 순서를 역으로 하면 HOPE, 희망이 됩니다.)
당신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HOPE 약을 건네주었던 것이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사람들의 낙관적인 말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고통당하는 자식을 두고 볼 아비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까?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지키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2500여 년 전 바벨론으로 끌려갔던 포로들에게만 필요한 것이겠습니까?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있다면 희망입니다.
소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렘 29:11)
-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새번역)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꼭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건이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유일한 손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바벨론의 포로들처럼 우리가 세 가지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의 희망을 경험할 수 있고,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셔도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어야 합니다.
바벨론으로 끌려온 포로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탄식했을 것입니다.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선하시다는 것을 믿기 힘든 상황입니다.
(렘 29:4)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으로 잡혀가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렘 29:16-18)
-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과 이 성에 사는 모든 백성
- 곧 너희와 함께 포로 되어 가지 아니한 너희 형제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 보라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에게 보내어
- 그들에게 상하여 먹을 수 없는 몹쓸 무화과 같게 하겠고
-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들을 뒤따르게 하며
- 그들을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흩어 학대를 당하게 할 것이며
- 내가 그들을 쫓아낸 나라들 가운데에서 저주와 경악과 조소와 수모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이며, 선한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나라에 남은 백성들의 죄를 심판하셔서 열방으로 흩어 버릴 계획을 하십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죄의 심판이 일어납니다.
심판이 일어나기 전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장 유황 불에 녹아버릴 롯과 그의 딸들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이끌어낸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주를 받아 멸망할 유다 나라와 예루살렘으로부터 바벨론의 포로 되게 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았겠습니까.
구원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믿음은 희망의 불꽃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당한다고 하여 무엇이든지 악하고 몹쓸 것이 아닙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이 주시는 고통 속에 큰 평안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 38:17)
-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고통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2. 내가 복을 받지 못하면 내 자손이 복 받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칠십 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나이로 보아, 가라고 해도 갈 수 없을 것이고, 대부분은 포로로써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지른 죄를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죄를 덮어둔 채로 그 땅을 축복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심판을 통해서 묵은땅을 갈아엎어야 했습니다.
포로로 잡혀온 이들이 값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보고 일하십니다.
포로 된 자들이 썩은 밀알처럼 값을 치름으로 인해
그다음 세대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백성,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포로 된 자들이 이 사실을 믿었다면 매일매일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습니다.
대니 토마스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란 무엇이냐?
자력으로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성공이냐?
그것은 성공과는 상관이 없다.
성공은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행하느냐에 달려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나의 포로 생활이 값을 지불하는 것이라면 포로 생활은 실패작이 아닙니다.
새로운 삶에 희망을 가지는 것입니다.
3.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믿어야 합니다.
칠십 년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중노동에 시달리는 노예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았을 것입니다.
칠십 년은 긴 세월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사랑이 풍부하신 하나님.
항상 우리를 눈여겨보시면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포로생활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고만 계시겠습니까?
포로 생활 칠십 년 동안 주실 은혜를 하나님이 준비하고 계실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렘 29:12-13)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절망은 희망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희망으로 변화됩니다.
고통이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필요한 은혜를 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기도의 문을 활짝 열고 언제든지 찾아오라 초청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위로가 필요합니까?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평안이 필요합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아침, 저녁 살아갈 일이 걱정되십니까?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서 엎드리십시오.
우리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엡 3:20)
-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헬렌 켈러
행복의 문이 하나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닫힌 행복의 문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막 열릴 문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문이 사방으로 닫힌다 해도 위를 향한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소망이 되고,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1. 내가 당하는 고통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2. 내가 고통당함으로 내 자손이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3.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기도하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필요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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