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동네에서 망나니로 소문난 아들을 둔 어느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들은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다 챙겨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노심초사하며 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 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 자식 없는 샘치고 그만 잊어버리세요."
그때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나도 만약 그 아이가 당신의 아들이었다면 벌써 잊었을 겁니다."
부모는 자녀가 집을 나갔다 해서 자기 자녀를 절대로 잊어버리거나 버리지 않습니다.
(호 11:8)
이 말씀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라는 거죠.
호세아 1장에서 11장까지 계속 되풀이되는 한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계속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깊은 사랑 속에 당신이 들어가고 그 사랑을 누리며 사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호세아 1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세 가지로 과거 얘기를 하고, 현재 얘기를 하고, 미래 얘기를 합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의 과거를 보겠습니다.
(호 11:1-2)
-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과거 애굽의 노예로 430년 동안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노예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아들이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는 내 백성이 아니라, 내 아들이고 표현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과의 긴밀한, 친밀감을 얘기해 주는 거죠.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못 할 때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혼자 힘으로 출애굽 할 수 없었습니다.
430년 동안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힘으로 출애굽 하게 됩니다.
출애굽은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척 초라하고 비참한 노예들이었고
애굽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버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열정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절망 속에 살아가는 노예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아들이라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아들'이라 부르신 것이 호세아서 뿐만 아니라
이미 모세에게, 모세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출 4:22)
-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호 11:1)
-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호세아 11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이유가 나오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이끌어 내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하나님은 노예로 살아가는 초라한 노예들을 내 아들이라 말씀하시고
애굽의 종살이에서 그들을 이끌어낸 딱 하나의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을 아들이라 칭하고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불러냈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엄청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또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의 얘기를 듣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고 바알, 즉 우상에게 나아갑니다.
이것은 세상의 풍요와 세상이 주는 쾌락을 좇아 계속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호 11:3-4)
-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으시고 옳고 그름을 가르치시고
그들을 삶을 고쳐 주시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애굽과 같이 세상에 빠져 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만 세상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요 15:16)
-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팔에 안아 주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
이것은 과분한 은총이며 과분한 사랑입니다.
초라한 내가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 그분을 어찌 아버지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게 웬 사랑입니까, 이게 웬 은혜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모르고 살아가니 정말 어리석은 자 아닌가요.
2. 이스라엘 사람들의 현실입니다. 현재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현재는 호세아 11장 5-7절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잘 알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합니다.
(호 11:5-7)
-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자꾸만 우상인 바알을 숭배하고 세상으로 점점 빠져 들어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들어서 그들을 공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칩니다. 힘들게 살아갑니다.
때마침 앗수르의 왕이 죽게 되자,
이스라엘은 정치적 상황을 틈타 남쪽에 있는 애굽 나라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나 앗수르에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서 다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철저한 공격은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 앗수르의 공격을 받고 조공을 바칠 때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호세아 10장에서도 이스라엘은 위기에 처하게 될 때면
앗수르에게 붙었다가 애굽에 붙었다가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함에 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굉장히 안타까워하십니다.
(호 11:6-7)
-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돌아오길 싫어하는 그들에게
앗수르의 침략을 허락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망하게 하십니다.
칼로 성읍을 치고 빗장을 깨뜨렸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해 일어서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동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 1:2-3)
-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 매를 드십니다.
우리가 우상에 빠질 때, 바알을 섬길 때, 이 세상의 풍요와 세상의 쾌락에 빠질 때
하나님이 매를 드십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 세상에 빠져 사는 우리에게 매를 허락하십니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함성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앗수르가 침략하는 고난이 있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채찍질입니다.
지금 혹시라도 죄를 짓는 분이 있다면, "아무도 보지 않는데 뭐, 괜찮겠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계십니다.
죄라는 죄는 어떤 죄든지 다 회개하고 지금 당장 버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양심에 찔리는 것이 있습니까?
"나는 지난 10년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살아왔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죄를 범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 있어야 됩니다.
당신에게 선한 양심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양심이 살아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이 올 때 빨리 죄를 버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우리의 도움은 앗수르가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은 애굽이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은 이 직장, 저 직장이 아닙니다.
우리의 도움은 이 사람, 저 사람이 아닙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시 146:3)
-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귀인, 정치적 힘이 있고 경제적 힘이 있는 사람, 내 위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돕는 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도움은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래를 보겠습니다.
(호 11:8)
-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똑같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하고 폐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망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습니다.
창세기에서 소돔과 고모라성이 멸망할 때,
아드마와 스보임은 소돔과 고모라 성과 함께 멸망했던 이웃 성읍들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처럼,
아드마와 스보임같이 망하게 두겠느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긍휼이 불붙어 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긍휼은 히브리어로 라함을 뜻합니다.
아기를 임신한 엄마의 태를 이야기합니다.
아기를 임신한 엄마는 태 안에 있는 아기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모릅니다.
먹는 것도, 걷는 것도 얼마나 조심스러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태 안에 있는 아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불붙어 타는 마음이 태아를 품은 엄마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로 인해 망하게 될 때
찢어지는 듯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 11:9)
-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죄를 범할 때 잠시 진노는 하셨지만
영원히 멸망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라 말씀합니다.
사람은 참는데 한계가 있고 기다리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의 마음의 크기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광대하시기에 한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망하도록 오래 내버려 두지 않으시며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실패하면 자녀의 아버지인 하나님의 실패가 됩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넘어지고 실패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를 계속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호 11:10-11)
-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자는 동물의 왕이죠.
사자가 한 번 크게 울부짖으면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사자는 강한 자를 상징하는 거죠.
하나님이 울부짖으면 집 떠난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집에 머물게 된다고 예언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한번 명령하시면
모든 나라의 왕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대 땅으로 돌려보낼 것을 예언하는 것이죠.
(호 11:10-11)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범하고 심판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향한 새로운 기회를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심이 참 마음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내 아들이라 말씀하시고
내가 어찌 너를 망하게 내버려 두겠느냐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벌하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심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매를 드심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닙니다.
(애 3:33)
-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지금 큰 질병으로 고통 중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부부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까?
부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습니까?
재정에 큰 압박을 받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 회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금이 고난의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인생을 다 망친 것 같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다 허송세월로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시간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에 새로운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호세아 11장을 통해 한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Father's Love.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흑수저로 일용직을 하며 초라하게 사는 청년에게
어느 날 갑부가 나타나서 내가 너의 아버지라 밝힐 때 그 청년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입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 마지막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란 사실은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출수 있는 사건입니다.
온 우주를 한 마디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분이 내 아버지라니...
하나님 아버지는 이 세상의 어떤 아버지와도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평생 살면서 최고의 아버지라고 여겨지는 분보다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수 천배, 수만 배 더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큰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평범한 아들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만드신 성자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이 더럽고 추한 나를 위해 아들을 죽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예수를 나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더럽고 추한 우리 속에 들어와 영원히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무모한 사랑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온 우주보다 크신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나는 초라하게 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열등감을 가지고 살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미래에 대하여 불안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래에 대하여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녀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걸 믿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매일 염려, 근심, 걱정, 두려움,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면 왜 염려, 근심, 걱정, 불안 속에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믿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자녀가 맞습니다.
(요 1: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당신을 세상이라는 애굽에서 끌어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셨습니다.
호세아가 음란한 여인을 찾아가서 계속 구애를 하듯이
하나님이 더럽고 추한 나를 찾아와서 계속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은 놀랍고 경이롭고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런 소망이 없는 나에게 찾아오셔서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나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집을 나간 탕자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자꾸만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불러도 거절하고 하나님을 품을 떠나갑니다.
결국 탕자처럼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 우리 인생을 다 낭비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겠죠.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 자체가 형벌이고 저주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닙니다.
분주한 활동과 소유가 많더라도 공허할 뿐입니다.
죄를 멀리 하십시오.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는 나 스스로 내 미래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큰 고난이 닥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고난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애정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윗은 고난당하는 것은 내게 유익이라 말하였습니다. (시 119:7-11)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고난이 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자,
앗수르에게 망하게 하시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호 11:8)
-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실수했다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까요?
내가 죄를 범했다고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실까요?
하나님이 나를 영원히 망하게 내버려 두실까요?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영원히 망하게 두겠느냐
혹시 "나는 망했다."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 갈팡질팡하는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내가 어찌 너는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영원히 망하게 두겠느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은 한 동안 방황의 구렁텅이에 빠졌습니다.
그는 오토바이 폭주족이 되었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자식이 술에 취해 있을 때
마음 아파하면서도 끝까지 아들을 품어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에 감동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앞서
대학 시절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남기고 집을 떠납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사랑하시지만
나 같은 인간을 하나님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못난 자식을 사랑해주고 용납해 주는 부모님께 너무나 면목이 없어서 남긴 메모였습니다.
대학생 때 집을 나간 프랭클린 그래함은 세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늘 들어왔던 성경 속의 도시, 예루살렘.
성경의 역사가 실제로 펼쳐진 예루살렘 땅에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받아 주시겠지만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면 나같이 못된 인간을 그냥 놔두시지 않을 거야.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허름한 호텔을 숙소로 정했습니다.
호텔에 비치되어 있던 기드온 성경을 발견하고 그 성경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별생각 없이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의 눈 앞에 나타난
(롬 8:1)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청년 프랭클린 그래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신다는 사실.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어떤 사람도 정죄하지 않는다는 사실.
마치 자기를 향해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아." 말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눈물이 터졌습니다.
호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펑펑 울면서
"주님, 제가 주님께 돌아갑니다."
"주님, 제가 범죄 하였습니다."
그는 회개하고 실컷 울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당장 아버지께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프랭클린 그래엄은 아버지 빌리 그래엄이 돌아가신 뒤,
그 뒤를 이어 전 세계적인 목사님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을 하찮은 존재로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 자격은 바로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을 하나님 마음 깊은 곳에 샘물이 솟아나듯,
하나님의 마음에는 당신을 향한 사랑이 계속 솟아나고 있습니다.
혹시 나는 회생불가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다시 새로운 일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그러니 아무리 큰 어려움을 만났다 해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당신의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미래를 포기하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없어요. 나는 내 죄를 알거든요."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이 주는 거짓말입니다.
당신 안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믿지 마십시오.
도리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빼앗아 가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내겠습니까?
바울의 외침을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롬 8:35-39)
-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내가 확신하노니
-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를 사랑한다 말씀하셔도
우리는 늘 하나님이 다른 사람은 사랑할지 몰라도 나는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잠수함이 있습니다
300m, 500m 깊이의 잠수함은 심해 2,000m, 3,000m에는 못 내려갑니다.
그 이하면 수압이 너무 세기 때문에 2,000m, 3,000m 되는 곳에 다니는 잠수함은 특수 강철,
굉장히 두꺼운 강철로 건조해야 잠수함이 견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두꺼운 강철로 특수하게 만든 잠수함도 견디지 못하는 높은 압력 속에 물고기들은 살아요.
그 물고기는 두께가 강철이 아니고 1cm도 안 되는 피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고기가 어떻게 2,000m, 3,000m의 수압을 이겨 냅니까?
그것은 물고기 배 안이 밖에 있는 압력보다 더 센 압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내면의 세계가 밖에 있는 것을 다 이겨낸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생각지 않았던 어려움과 고난과 환란과 위기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죽음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아버지 되심을
믿는 사람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전체가 이야기하는 것은
너는 나의 아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를 위해 내 아들을 죽일 만큼,
그래서 너를 살릴 만큼 너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 사실을 믿을 때 열등감이 사라집니다.
자존감이 생깁니다.
내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불안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실패해도 사랑하십니다.
넘어져도 사랑하십니다.
다시 일으키십니다.
나를 향하여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눈으로 본 적 없고, 귀로 들어 본 적 없으며
상상하지 조차 하지 못할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예비해 놓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들은 자기 아들, 딸을 사랑합니다
근데 자녀가 말을 안 들어요.
그래도 사랑합니다.
부모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길 원합니다.
세상 아버지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하물며 창조주 되신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지구를 만드셨습니다.
온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당신, 한 명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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