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1열) 눈길(2017) vs 아이 캔 스피크
방구석 1열 15화 2018년 8/10일
광복절 특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눈길>과 <아이 캔 스피크>
우리의 아픈 역사를 섬세하게 그리다
가슴 먹먹하게 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다
8.15 특집 아직 끝나지 않은 가슴 아픈 이야기
<눈길>과 <아이 캔 스피크>
많은 영화에서 다뤄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이야기
변영주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1995년 <낮은 목소리>라는 다큐멘터리로
극장에서 상영해서 감독 데뷔를 했고
97년, 99년까지 이어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3부작 다큐를 만들었습니다.
Q. 위안부를 다룬 다큐 어떤 용기로 만드시게 됐는지?
변영주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녀들의 이야기를 찍고 싶었습니다.
제가 찍고 싶었던 건 할머니들의 과거가 아니라 세상에 자신들을 드러내는 순간,
할머니들의 삶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현재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매일 찾아가서 🧑 할머니들이 받아 주셨나요?
구박을 받죠.ㅎㅎ
1년의 진심 어린 설득 끝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마음을 열어 주셨어요.
Q. 독도 문제나 한일 관계에 관심을 가진 계기?
호사카 교수
일본에 많은 우수한 재일교포로 인해 한국에 관심이 생겼고,
일제강점기 연구를 하고 독도 연구를 하다가
2015년 12월 28일 피해자 동의 없이 처리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위안부 문제를 더욱 깊이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눈길 2017 3.1절 개봉
감독 : 이나정 #KBS 드라마 PD 출신
배우 : 김새론 김향기
#2부작 드라마로 먼저 방영
작품을 준비할 때 처음에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가장 먼저 봤습니다.
리드 무비
<눈길>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현재에는 과거와 다른 이야기가 쓰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같습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소외된 사람들이 공감과 위로를 통해 맺는 따스한 연대죠.
변영주
역사적인 비극을 재현할 때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예의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극 영화 중에서 역사의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를 갖춘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진중권
표현이 절제되어 있잖아요.
역사적 비극을 잔혹하게 보여주는 게 일종의 포르노그래피거든요.
그런 면에서 드라마적인 담담한 연출이 훨씬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윤종신
<눈길>을 드라마 겸 영화로 기획한 이유는
영화제를 통해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영화로도 기획한 것입니다.
변영주
감독도 예의를 다 해서 촬영을 했다고 느끼는 지점이 김새론, 김향기 배우가 10대니까
#일본군 콘돔 세척 장면에서
세척 장면은 성인 대역을 시켜 촬영하고 김새론 배우는 대야를 치운 상태에서 연기했죠.
정말 예의 바르게 찍은 작품입니다.
김이나
#이효리 씨는 #'날 잊지 말아요' 노래를 OST로 재능기부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변영주
기존의 위안부 피해자 서사를 보면 '강제로'라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무작위로 끌려갔다'라는 식으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눈길>에 나온 것처럼
공장에 가서 돈을 벌게 해 줄게, 상급학교 진학시켜 줄게. 식의 거짓에 속아 가게 되는 겁니다.
호사카
당시 위안소에 끌려온 24세의 조선인 여성을 요미우리 신문 기자가 인터뷰했는데
선생님이었어요.
도쿄에서 1년 간 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에 견문을 넓힐 생각에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선생님은 배를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까지 갔고 그다음 도쿄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남쪽으로 가기 시작한 배는 저 멀리 버마(현 미얀마)까지 갔고
영문도 모른 채 위안부로 강제 징용당했다고 증언했습니다.
Q. 일본군이 위안소를 만든 이유
진중권
일본이 세계 1차 대전 때 참전을 하는데
시베리아에 배치된 일본군 중에서 일개 사단이 성병으로 기능을 상실해 버린 거예요.
난징 대학살 때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군들이 민간인들을 강간합니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런 무문 별한 일본군을 통제해야겠죠.
그래서 군부에서는 부대 내에 위안소를 만들어 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고
일본 측 주장을 보면 그걸 민간업자한테 맡겼다는 거죠.
근데 군부에서 그걸 몰랐겠어요?
호사카
일본 쪽 공식문서에 따르면
"군에서 민간 업자를 선정해라."
업자들이 "자발적으로 했다"고 말하도록 시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윤종신
일본은 분쟁화될 것을 뻔히 알고 대비한 것이군요.
변영주
군속 : 민간인이지만 군대에 속해서 일을 봐주는 사람
근데 사실 군속은 대부분 조선인이었습니다.
동네 사정(어느 집에 몇 살이 된 소녀가 있다)은 같은 조선인이 더 잘 아니까
일본은 조선인들을 교묘히 이용한 거죠.
김이나
그래서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같은 연령대 분들 중에
위안부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을 가진 분들이 많다고 느꼈던 건
군속의 시나리오대로
돈을 받고 자발적으로 갔다는 일본 측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죠.
호사카
위안소에 자발적으로 오지 않았다고 호소하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강제로 끌려 왔다는 호소를 들은 일본군 병사가 헌병에게 이 문제를 보고 했는데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는 건 조직적인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변영주
위안부 피해자들이 위안소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대부분 굉장히 안전하게 이동돼요.
왜냐면 사실은 되게 비참한 이야기인데
일본군 입장에서 기차에 타는 순간 그녀들은 인간이 아니거든요.
군수품이란 말이에요.
군수품이기 때문에 전쟁터까지는 안전하게 이동되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거죠.
그런 다음 제일 먼저 군의관에게 검사를 받습니다.
대부분의 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은 첫 번째 성폭력이 군의관에 의한 거예요.
군대와 연관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직적이었던 범죄인 거죠.
Q. 전쟁이 나면 군인들의 성욕을 해소해주는 위안소 같은 시설이 늘 있었나?
호사카
일본과 독일은 군대 내에 위안소를 만들고 데리고 다닌 나라는 오직 두 나라뿐입니다.
군대 주변에 성매매 시설이 있는 경우는 많았지만
일본과 독일처럼 군대에서 직접 운영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일본 내에서도 법적으로 금지된 행위입니다.
그러나 군이 그때는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거절할 수 없는 시대였던 것입니다.
일본 정부가 군의 모든 요구를 받아들인 문서도 많이 있습니다.
변영주
우리가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처음 발굴한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창립자이신
윤정옥 선생님이십니다.
해방 후 징용 갔던 남자들은 다 돌아왔는데 그때 함께 징용 갔던 여자들은 왜 소식이 없을까?
아마도 어떤 피해가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자료 조사를 통해 이 문제를 발견해 내신 거죠.
<눈길>에서도 표현된 침묵하는 피해자들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야. 엄마한테도 말 안 해."
피해 사실을 말하고 싶어도 사회의 싸늘한 시선과 차디찬 말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증언을 한 이유
윤정옥 교수 등 활동가들이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자
일본 정부에서 이를 부정하며 증거를 요구했고
그 뉴스를 TV에서 보신 김학순 할머니가 분노하신 거죠.
"살아 있는 증언자가 여기 있는데 "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에 최초로 공개 증언을 하신 것입니다.
윤종신
해방 전이면 북한도 우리나라였잖아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어떤지 궁금해요.
호사카
북한에도 위안부가 있다는 것을 일본에 얘기했거든요.
2015년 한일 합의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다 끝난 게 아닌가?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북한에서는 일본과 해결된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가장 무서워하고 있는 것은
평화로운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역사 문제로 일본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변영주
중국에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는데
<낮은 목소리 1>에는 중국 무한시의 일본 해군 기지로 끌려 간 한국 분들이
일본군이 패망 후 다급하게 도망가면서 그녀들만 그곳에 그대로 남겨진 거죠. 단체로.
놀라운 것은 이분들이 중국어를 하게 되면서 자기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 밝혔고
식민지 시대 피해자니까 중국 정부에서 국가유공자 급으로 대우를 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중국에서 택시 운전사 자격증 따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위안부 피해자 자녀들이 자격증을 딸 때 혜택을 제공해 줍니다.
중국에 남은 할머니들의 삶이 한국의 할머니들보다 행복한 거예요.
윤종신
국가의 대우에 따라 피해자들의 삶이 달라졌네요.
변영주
김대중 정부 때부터
국가에서 생활비. 간병비 등을 지원하면서 할머니들의 삶이 완전히 바뀌는 거예요.
93년에 만난 피해자 할머니는 가족이 알까 봐 겁난다고 하셨어요.
정부의 지원사업 이후 만난 할머니는 제사도 함께 가자고 말씀하세요.
서울에서 중요한 손님들 오셨으니까 음식 좀 차리라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때 저는 사실 많이 울었어요.
나라에서 존중해 주니까 사람들이 존중할 수밖에 없구나를 느꼈거든요.
진중권
2015년 위안부 관련 협상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게 평화의 소녀상입니다.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국화와 칼>을 보면
일본과 서구 문화를 비교하는데
서구는 죄책감의 문화입니다. 기독교적인 양심으로 죄를 판단하죠.
일본은 수치심의 문화입니다. 죄는 짓는 순간이 아닌 남들이 아는 순간 죄가 발생합니다.
죄 자체보다 타인의 시선을 중요시합니다.
일본 문화에선 죄를 인정 안 하는 게 곧 죄를 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의 소녀상을 못 참는 것입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도 알게 되겠죠.
그러면 자신들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호사카
일본 고유의 민족 신앙인 신도(神道)가 있습니다
신도에서 죄는 더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본 집은 매우 깨끗한 거죠.
자신과 주변을 깨끗이 해야 죄가 사라지는 거예요.
죄는 씻을 수 없는 원죄 개념이 아닙니다.
신도에서 죄를 없애기 위해 먼지를 터는 '하라이' 정화의식을 실행합니다.
Q. 아직까지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는데
그렇다면 위안부 피해자들의 투쟁은 어떤 의미였을까?
변영주
우리나라의 인권 운동 중에서 가장 성공한 시민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할머니들이 처음 증언을 하실 때
이전에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 스스로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하시면서 숨으셨어요.
그런데 세상에 스스로를 드러내신 후에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할머니들이 성장을 하시는 거예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중에 한 분이랑 베트남을 같이 간 적이 있어요.
베트남 전쟁 당시에 한국군에 의해서 학살당한 마을입니다.
그래서 딱 한 명의 베트남 여성만 생존한 마을인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나라에서 가르쳐 준 거 외에는 모르시니까
한국군의 학살에 대해 반신반의하셨습니다.
"일본군인인 나한테 한 거랑 한국군인이 베트남 할머니한테 한 거랑 엮어서
없던 일로 하자고 나를 베트남으로 데려 왔나."
하시길래 다들 걱정을 했습니다.
거기서 그 베트남 할머니 한 분이 자기 중언을 하신 거예요.
증언이 끝났는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손을 번쩍 드시네?
"나는 일본군에 의해 피해를 당한 할머니인데
사과를 받기 위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해요.
당신도 한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하세요.
수요일엔 하지 말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하면 나도 갈게요."
저는 살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연대를 본 적이 없어요.
일본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할머니들은 보조금을 모아서 성금으로 보내십니다.
자기 스스로를 가장 인간답게 만든 무엇보다 성공한 싸움이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자부심과 명예를 지키며 살아가시는 분들입니다.
호사카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는 일본인들도 생겼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성공이었고 앞으로도 성공할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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