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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삶 ♡ 영화이야기

(내겐 명작)첨밀밀(Almost a Love Story)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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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명작) 첨밀밀(Almost a Love Story) 1996

 

참 치열하게 살았고 사랑 앞에 재지 않았던 젊은 날을 그린 영화 <첨밀밀>

여명과 장만옥이 주연을 맡아서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를 선사했죠.

섬세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영상이며 음악까지... 지금 봐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명작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980년대 후반엔 돈을 벌러 홍콩으로 온 중국인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중국이 개혁 개방을 하기 전이어서 홍콩은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곳이었죠.

<첨밀밀>의 두 주인공도 부푼 꿈을 안고 홍콩에 옵니다.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말이죠. 

 

1986년 3월 1일 기차 한 대가 홍콩의 카오룽 역에 도착합니다.

피로에 지쳐 잠들었다가 뒤늦게 부랴부랴 내리는 소군. 그는 중국 본토 텐진에서 왔습니다.

그의 목표는 홍콩에서 돈을 벌어 성공해, 약혼녀 소정을 데려오는 겁니다.

같은 기차역에서 내린 또 한 여자가 있었죠. 이해타산이 빠르고 광둥어를 재빨리 익혀 홍콩 출신인 척하는 이교.

두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원과 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됩니다.

이교는 참 열심히 억척같이 삽니다. 패스트푸드점 직원, 학원에 사람을 소개해 주고 커미션 받기, 꽃집 아르바이트...

이교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에 집을 짓는 거죠.

소군은 늘 바쁘게 사는 이교에게 연민과 동지애를 느낍니다.

내 차로 데려다 줄게요. 소근의 천진난만한 제안에 응했더니 이교 앞에 나타난 것은 짐 자전거입니다.

이 남자 대책 없구나. 그런데 웬일일까요? 자전거로 복잡한 홍콩 시내를 가로지르는데 콧노래가 나옵니다.

고향에서 자주 부르던 등려군의 노래, 첨밀밀. 13억 중국인이 사랑한 가수, 등려군.

둘 사이에 그녀의 노래는 질긴 인연처럼 따라붙죠.

이교는 등려군의 복제 테이프를 팔아 보겠다고 장터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데요.

하지만 둘이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어요. 홍콩에서 등려군 음반을 사면 본토 출신이란 걸 알리는 셈이 된다는 걸요. 할인을 거듭해도 테이프는 팔리지 않았죠. 장사는 쫄딱 망하고 비까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그날 밤, 좁은 소군의 집에서 친구의 경계를 넘는 두 사람.

다음 날 소군은 이교에게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아... 어젯밤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어제는 춥고 비가 내렸어요. 둘 다 온기가 필요했을 뿐이죠. 훗, 우린 영원히 친구예요.

이교는 애써 쿨한 척 소군에게 선을 긋죠. 소군에겐 약혼녀 소정이 있고 이교는 인생 목표가 확실합니다. 

 

그러나 이교의 야심에 운이 따르진 않았는데요.

주식 투자에 실패해 빚만 잔뜩 지게 되자, 안마사가 되고 거기서 암흑가의 보스인 파오를 만나 인연을 맺게 되죠.

이교에게 짝이 생기면서 둘은 이별을 하게 됩니다. 

 

1990년 겨울, 소군은 드디어 약혼녀 소정을 데려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 결혼식엔 이교도 왔고요.

소군은 그 날밤, 잠든 신부의 등에 대고 고백합니다. 음~ 내가 홍콩에 처음 왔을 땐 낡은 청자켓을 입고 매일 밥을 세 공기씩 먹고 자고 일어나서 일 나가고 그래도 매일이 새롭고 재밌었어. 그때 네가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걸...

낯선 땅에서 힘든 시간과 외로움을 함께 했던 이는 소정이 아니라 이교였죠.

소군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나서야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결혼식 장에서 마주친 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긴 이교도 마찬가지였죠.

이제 이교는 파오 덕분에 빚도 갚고 형편도 나아졌는데 그래도 착잡하고 가슴이 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홍콩 길거리에서 등려군을 보게 된 두 사람.

우리 오랫동안 팬이었잖아. 소군은 차에서 내려 달려가 점퍼 뒤에 사인을 받습니다.

눈 앞에서 멀어져 가던 소군을 보던 이교는 마음의 일렁임을 주체하지 못하고 운전대에 머리를 숙입니다.

띠~~~~ 빵! 경적소리가 신호였을까요?

소군은 뚜벅뚜벅 걸어와서 자동차 운전석으로 몸을 숙여 이교에게 입을 맞추죠.

그렇게 서로를 향해 오래 억눌러 왔던 마음이 폭발해 버립니다. 아하~ 망했네. 어, 망했어.

이교와 소군은 동시에 우리 이제 어쩌지?

나 자신을 속이는 짓은 이제 그만하고 싶어. 돌아가서 소정한테 말할 거야. 너, 너... 어떻게 할지 네가 결정해.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네가 보고 싶어. 

그러나 사건에 휘말린 파오 때문에 또 한 번 이별을 맞는 두 사람. 

 

세월은 흘려 1995년 5월 8일. 대륙의 디바, 등려군이 죽었습니다.

이교는 뉴욕의 길거리 전자대리점 앞에 발길을 멈추고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TV를 지켜보죠.

한 남자가 지나가다 홀리듯 멈춰 서서 같은 화면을 바라봅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자 세월도 지우지 못한 오랜 인연, 오랜 사랑이 문뜩 눈 앞에 서 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향해 조금씩 입고리를 올리며 웃었죠. 

가난했던 젊은 날 참 열심히 살았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봤던 두 사람.

둘을 이어준 건 이번에도 등려군이었어요.

서로의 마음을 간직한 채로 떠나보내야 했던 사랑. 그 사랑이 긴 세월을 돌고 돌아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환한 웃음 속 눈빛이 말을 건네죠. 우린 끝끝내 만날 운명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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