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1
Rev. 김원태
1873년 몰로카이 섬에 건너간 그가 처음 몰로카이 섬에 갔을 때는
그 장소는 지옥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나환자들은 서로 싸우고 온통 절망에 빠져 있었고 매일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겨 났습니다.
그가 그곳에 나환자들에게 다가가기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그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들을 사랑하십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나환자들이 비아냥거렸습니다.
"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이토록 우리의 살이 썩어 문드러지게 내버려 둔단 말인가?
하나님은 당신처럼 건강한 사람들이 나 읊어대는 잠꼬대지."
이에 다미안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제게 문둥병을 주옵소서,
저에게도 나병을 허락하셔서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하옵소서."
마침내 그는 그곳에 온 지 12년이 된 1885년에 나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나병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
오랫동안 예고해 온 것이라고 하면서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극도의 적대심과 경계심으로 다미안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그들은
다미안이 문둥병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그 아픈 환부를 다미안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다미안은 그 환부에 고름을 짜내고 그곳에 약을 발라 주고 그들을 치료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다미안을 신뢰하고 존경하였습니다.
그는 1889년 4월 14일 4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몰로카이 섬에 있는 나환자들은 마치 자기 친아버지가 죽은 것처럼 통곡했습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 두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자, 그렇게 행복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영원한 외로움, 영원한 열등감, 영원하나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범죄 한 인간들에게 다가와서 나는 너희들을 사랑한다 말씀하셨습니다.
범죄 한 인간들에게 다가와서 기적을 보여 주면서,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다 말씀하셨습니다.
때때로는 심판의 매를 들기도 하며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한 번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진 사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이제 인간이 되어 인간에게 다가오셨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천하고 천한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신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죄 많은 이 세상에 ,
죄 많은 인간의 아기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본 자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면 사람이 죽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친히 내려오셔서 하나님을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요 1: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마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빌 2:6-8)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 1:3)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을 만드신 그분께서 작아지고 작아지셔서
마침내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조그마한 인간의 수정란, 태아가 되어
불안에 떠는 소녀의 몸에 오셨을,
온 우주를 만드시고 온 우주를 호령하시던 하나님.
세상의 모든 군대와 제물을 장기판의 말 다루듯 하던 그분이
팔레스타인의 한 아기로 말 못 하고 딱딱한 음식도 제대로 못 먹으며 대소변도 못 가리고
어린 어느 소녀 품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고
그 소녀에게서 음식과 사랑을 공급받아야 하는 어린 아기로 오셨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때 산에 가 보면 곳곳에 개미들의 집들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난 뒤에 물구멍이 생깁니다.
근데 이 개미들이 그 물구덩이 생긴 줄 모르고 줄지어 오다가
그 무리에 자꾸만 밀려와서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하여 제가 이 개미를 향하여 얘기했습니다.
"개미야, 이리 가면 죽는다. 빙 둘러서 가라, "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만 밀려와서 빠져 죽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제가 개미가 될 수도 없고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듣고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인간들을 보니 죄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얘기해도 못 알아듣고 아무리 음성을 들려줘도 알아듣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드디어 인간이 되어서 말을 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 예수님은 이 땅에 왜 오셨을까요?
1)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 1:21)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여호수아라는 말입니다.
이 단축형이 헬라어로 예수가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라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 예수란 이름은 예수님만 사용한 이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흔하고 흔한 이름이 여호수아이며 예수였습니다.
■ 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예수라는,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많이 가졌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 때부터 다른 나라로부터 핍박을 받으며 식민지로 살았습니다.
구약에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가 애굽의 식민지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중에 바벨론의 포로가 됩니다.
구약에서 다 그들은 주로 포로로 식민지로 살아갑니다.
또, 신약에서는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들 마음 안에 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해줄 자, 메시아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자기 아들이 그 메시아가 될지 모른다 해서 이름을 예수라 짓는 것입니다.
뭐가? 바로 우리를 구원할 자, 그 여호수아, 예수가 돼라...
그래서 아들이 태어나면 이름을 예수로 많이 지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대하고 고대하고 기다리던 그 예수가 정말 태어난 것입니다.
진짜 예수가 오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아들의 이름이 예수라고 불려질 때 이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이 마음이 얼마나 두근두근하며 이스라엘 전 민족이 기다렸던 그 예수가
바로 자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뛰었을까요?
그 두근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요셉의 심정으로
(마 1:21)
-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이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은 내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예수, 주님이십니다.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은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우린 다 죄가 있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죄가 더 많아집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자기 지은 죄를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특별히 병에 걸려서 누워있는 분, 자기 어렸을 때 지은 죄가 다 지나갑니다.
사고가 나면 또 죄가 다 지나갑니다.
어려움에만 들어가면 자주 나타나는 죄,
이 죄의 문제를 안고 죽는다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지옥뿐입니다.
이 인류의 암보다도 더 고질적인, 지독스러운, 고칠 수 없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빚진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이 뭘까요? 빚을 갚아주는 것입니다.
눈먼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이 월까요? 눈을 뜨게 해 주는 것입니다.
다리를 저는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이 뭘까요? 뛰게 해 주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최고의 선물이 뭘까요? 감옥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 예수님의 생애를 잠깐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죄지은 자를 책망하시고, 자살해라 자폭해라 이렇게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다가오셔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그 죄를 지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
간음한 여인을 바리새인(성경만 연구하는 사람, 율법만 연구하는 사람들)들은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죄를 모래 위에 쓰시고,
간음한 여인의 죄도 모래 위에 쓰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그 죄들을 다 지워주시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새로운 기회를 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요한》
예수님은 천둥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요한, 요한은 성격이 급합니다.
얼마나 벼락같은 성격인지,
자기가 전도하러 갔는데 그 동네 사람들이 전부 설교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 뭐하세요 빨리 천둥 쳐서 빨리 저 마을을 다 불태워 버리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아- 성격이 불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요한을 예수님은 사람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세리》
로마의 앞잡이로
유대인들의 돈을 갈취하고 악랄하게, 지독하게 구두쇠로 살았던 세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세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심으로 이 세리가 베푸는 자로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의 강도》
예수님의 오른편 강도 - 살인을 하고 사람을 죽였던 - 극악무도한 이 살인자,
이 사람의 죄를 다 지워주셨습니다.
《베드로》
예수님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죄를 다 지워주시고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울》
예수님은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의 죄를 다 지워주시고 사명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실수와 우리의 죄를
다 지워주시고 깨끗하게 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지은 죄 때문에 후회하는 분이 있습니까? 실패한 실수 때문에 후회하는 분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죄, 그 후회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다 지워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든 죄를 십자가에 짊어지고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다미안이 몰로카이 섬에 사는 나환자에게 다가가서
나환자가 되어 죽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병든 사람이 되어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죄인이 되어 벌거벗은 채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죄를 대신해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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