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명작)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 전편 모음 2001
1화. Currahee (101 공수사단의 구호 / 홀로 버틴다는 뜻이다)
▶ 시간적 배경 : 1944년 6/4 영국 어포터리(Upotterry) 비행장은
(최종 목적으로 유럽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앞서)
주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 강하를 앞두고 있다. →
(회상) 2년 전 1942년, 조지아주, 토코아 캠프에서
훈련기간만 2년이 넘는 공수부대이다.
조지아주 캠프 토코아에서 공수부대원들은
커래히 산('Stand Alone')을 뛰어오르내리며 훈련했다.
→ 기차 - 뉴욕항 - 군수송선 - 영국 어포터리 비행장을 다시 보여준다.
→ 유럽대륙으로 가는 수송기 안
1944년 6/4일
공수부대원들은 전투강하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영불해협은 폭풍이 몰아치고,
강하 지역도 바람이 심해서 강하할 수 없다는 미한 중위의 말에 24시간 대기 중이다.
부대원들은 영화를 본다.
영화는 1943년 Cary Grant주연의 'Mr.Lucky'이다.
기상악화로 인해 24시간 대기하는 동안,
닉슨과 윈터스가 날씨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날씨가 갤 것 같아."
연합군의 노르망디 작전은 1944년 6/5일 새벽을 D-데이로 정했다.
그러나 기상악화로 24시간 연기 후, 실행된다.
이는 아이젠하워 총사령관이
잉글랜드 포츠머스의 영국군 기상 분석팀의 건의를 받아들여
24시간 작전 연기를 결정한 것이다.
공수부대
적진 후방으로 침투하는 부대이다.
최정예부대라는 개념이 포함된다.
적진으로 들어가서 고립된 상태로 싸워야 하기 때문에
일반 보병보다 2-3배의 탄약과 식량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일반 보병보다 두 세배의 체력이 필요했다.
지원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발적인 퇴소도 가능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1년간의 의무 복무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일반병으로 징집 대상이 되었다.
병사들에게 가혹행위를 일삼고, 혹독하게 훈련시킨 소블.
이혼 후, 정신이상 증세로 자해를 하게 되었고, 정신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실제 임종 때,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가족들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됨됨이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금융인으로서 성공했다.
드라마에서 그려진 것처럼 실제로도 야전 능력은 없는 게 맞다고 한다.
다만, 주변 병사들이 싫어해서 좀 더 헤매도록 공작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극 중 소블은 마냥 미워할 수 없다.
큰 눈망울에 울음이 그렁그렁 맺힌 그를 때로는 안쓰럽게 여기게 된다.
커래히 산을 등반하는 훈련 중에, 소블이 'Hi-Yo, silver'라고 외친다.
이는 1938년 Roy Rogers의 Hi-Yo, Siver의 노랫말이다.
말(horse)인 siver에게 외치는 소리이다.
윈스터가 벅에게 말한다.
"장교는 어떤 경우라도, 병사들을 갈취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돼."
병사들에게 늘 진심을 전하는 윈스터의 면목이 드러난다.
리더는 착취의 주체가 아니며,
병사들 역시 리더는 나를 살리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신뢰해야 한다.
진급을 위해서 내 부하를 불필요하게 희생 시키거나, 내 부하를 소모품으로 써서는 안 된다.
스티븐 앰브로즈(1936-2002) : BOB의 원작가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뛰어난 리더십은 윈터스에게 배웠다."라고 말했다.
하사관의 인터뷰를 통해 소블에 대한 평가를 엿볼 수 있다.
''소블이 우리를 혹독하게 훈련시킨 게 도움이 되긴 했어.
사소한 트집으로 가혹행위를 일삼는 소블로 인해,
(대항의 의미로) 우리는 응집력과 단합력을 기를 수 있었고,
실제 체력도 좋아져서 전장에서도 고전하지 않을 수 있었어.'라고 하자,
윈터스는 소블의 훈련 능력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인격적으로 훌륭했던 윈터스도 소블에게는 너무나도 단호했다.
그 이유는 훈련 방법이 아닌, 리더십의 입장에서
그는 판단력과 상식 부족, 군사적 이해 부족으로,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미한 중위는 실제로도 목소리가 우렁차고, 남자다웠다.
잘생기고 총명했다.
D-데이날, 수송기 안에서 아내에게 쪽지를 썼다.
쪽지는 수송기가 이륙하기 전에, 밖에 있던 친구에게 전했고, 그 쪽지는 아내에게 전해진다.
《Dearest Anne.
In a few hours I'm going to take the best comanp of men in the world into France.
We'll give the bastards hell.
Strangely, I'm not particularly scares.
But in my heart is a terrific longing to hold you in my arms.
I love you Sweetheart-forever.
Your Tom.》
에반스(사이먼 페그)는 소블 옆에 늘 있던 병사로서, 윈터스에게 군법회의 통지서를 전달하는 인물이다.
진짜 소블의 신복이다.
농구하던 불이 그가 탄 차량을 공으로 칠만큼 싫어했다고 한다.
D-데이, 강하 전투 중 미한 대위가 탄 수송기에 함께 탑승했다. 공중에서 산화된다.
마이클 패스벤더를 볼 수 있다. 팬심으로...
극 중 전회차를 거쳐 볼 수 있다. 숨은 그림 찾기^^
1944년 6/6일 공수부대는 수송기에 나눠 타고 유럽 대륙으로 향한다.
♬♩. BGM으로 Michael Kamen(마이클 카멘)의 The Mission Begins가 흐른다.
제목부터 비상하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2화. Day of Days D-데이
소재 : 노르망디 상륙작전 북프랑스 노르망디, 디데이에 실시된 상륙작전, 1944년 6/6일
브레쿠르 마뇨르 강습 : 노르망디 상륙 작전 중에 었었던 강습작전 1944년 6/6일
1944년 6/5일, D-데이 전날.
노르망디로 가서 강하를 한다.
강하할 때, 갖가지 예측하지 못한 사고로 하루 만에 강하 인원의 절반이 사망한다.
실제로 악천후 속에 수송기는 초저공비행을 했고,
낙하한 인원 중 상당수가 낙하산을 펴지도 못한 채 사망했다.
넓게 퍼져버린 병력들이 본대에 합류하는데 시간이 걸렸고,
독일군은 대규모의 미군 병력이 온 것으로 오해했다.
윈터스는 생 메 글리제 인근에 낙하한다. 강하 도중 모든 군장을 잃어버린다.
몇몇의 공수대원들과 부대를 결성한 후, 생 마리 뒤몽을 향해 이동한다.
생 마리 뒤몽에는 윈터스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브레쿠르 마뇨르(Battle at Brecourt) 강습
집결지 근처인 브레쿠르 마뇨르 부근에 독일군의 포진지가 있었고,
유타 해변가로 상륙하던 공수단을 향해 포격을 가하고 있다.
독일군의 포를 제압하지 않으면
상륙부대가 내륙으로 전진하기 어렵기에 포진지를 제압해야 한다.
작전 지역을 정찰한 후,
윈터스는 이지 중대와 다른 중대로 구성된 13명의 소규모 침투조를 구성한다.
독일군의 88mm라고 알려진 포대의 위치, 기관총 진지의 위치를 제외한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독일군의 포대는 88mm 대공포가 아닌,
105mm 곡사포 포대로 배치되었다는 것과 각각의 포대는 참호로 연결되어
60명 정도의 독일군들이 배치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팔슈름예거 연대이다.
윈터스는 포를 장악하기 위해 참호선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했고,
부대원들을 배치하기 시작한다.
윈터스는 소규모 보명 전투의 기본인 사격과 우회를 적절히 배합한다.
엄호사격 위치에 두 대의 기관총을 배치함으로써 시선을 끌어낸 후,
우회 조를 침투시켜 소규모 기동으로 독일군의 MG42를 공격한다.
자신은 나머지 침투조와 TNT와 수류탄으로 포대를 함락시켜 나간다.
윈터스의 탁월한 전술로 단번에 독일군의 포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성공적으로 독일군의 포대를 탈취한 이날의 전투(브레쿠르 강습)는
웨스트포인트 교본에 수록된다.
이 날의 전투로 이지중대는 훈장을 수여받는다.
포대 탈취 전에 지휘관이 와서, 윈터스에게 말한다.
"독일군 88mm 대공포를 탈취하라."
그런데 극 중에서는 88미리가 아니고, 105미리 포가 나온다.
'아! 제작진의 실수구나. 88미리 포는 구하기 힘드니까 어쩔 수가 없었구나.'
전투 후에, 윈터스가 지휘관에게 88미리가 아니라 105미리였다고 보고한다.
허투루 드라마를 만든 게 아니구나 생각한다.
윈터스의 한 마디 대사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작 드라마가 탄생했다.
윈터스가 포를 제거해 주었기 때문에, 닉슨이 셔먼을 타고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립튼은 토코아 시절 하사의 계급으로 윈터스와 함께 이지중대 2소대 부사관으로 근무한다.
중대장이었던 소블의 무능함과 가혹행위로 인해,
D-데이 직전에 다른 몇몇의 부사관들과 함께 계급장을 반납하며 항명한다.
그 결과로써 중대장을 미헌 중위로 바꾸는데 일조한다.
립튼이 브레쿠르 마뇨르 전투에서 나무 위에 올라가서 총을 쏘는데,
이 때는 독일군의 기관총이 빗발치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도왔다. 나뭇잎에만 총알 세례를 맞았으니...
훗날, 립튼은 절대 나무에는 올라가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카랑탕에서 폭탄 파편으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잠시 부상 치료를 위해 부대를 떠난다.
2달 후인 마켓 가든 작전 직전에 이지중대로 복귀한다.
이지중대의 선임 부사관이 된다. 보충병들을 잘 챙겼다고 한다.
가니어는 BOB 최고의 전사 중 한 명이다.
윈터스가 뽑은 탁월한 학살자는 스피어스와 가니어이다.
노르망디에서 매복해 있던 독일군의 총알 세례에 병사들이 몸을 숙일 때도,
일어나서 정확히 적군의 발화지점을 파악해 사격 위치를 알려주었다.
이지 중대를 거쳐서 델타포스의 창설 멤버가 된 특 A급 전사의 전언에 따르면,
''내 평생 만난 군인 중에 최고의 전사 둘을 뽑으라면 가니어와 윈터스였다.''고 한다.
극 중에서 홀과 가니어의 다툼은 100% 창작의 결과이다.
앳된 모습의 앤드류 스콧을 볼 수 있다. 꺄~~♥
독일군 학살에 대해서는 스피어스 본인도 함구하고 있다. 진실은 오리무중!
다만, 술 취한 정찰병의 즉결처분은 사실이라고 한다. 그땐 죄가 되지 않았다. 으~무섭다.
전쟁의 참상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분들은 침묵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인터뷰에 성실히 임한 분들은 뱉어냄으로써 상처를 치유했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한 분들 위주로 에피소드가 그려졌고,
그랜트는 함구했으나, 다른 이들의 증언으로 훌륭했던 활약이 전해지면서
대령에게 술잔을 전하는 장면으로 탁월한 전투원이었음을 대신한다.
3. Carentan 카랑탕 (노르망디 해안의 작은 도시)
-밀리터리 덕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3화.-
배경 : 1944년 6/8일 프랑스 노르망디,
강하 후 흩어졌던 부대원들이 집결하기 시작한다.(대표적인 예로 블라이스)
→ 카랑탕(도시) 점령을 위해 이동한다.
→(D-데이 후 6일 경과) 6/12일, 카랑탕 시가전이 벌어진다.
→ (D-데이 7일 경과) 6/13일, Outskirts Carentan.(카랑탕 외곽)
→ (D-데이 25일 경과) 유타 해변에 있는 임시 주둔지.
카랑탕 전투
노르망디 전투의 상륙 당일, 10여 일간의 전투가 카랑탕 전투이다.
카랑탕에는 이미 독일의 공수부대인 제 6팔슈름예가가 자리 잡고 있던 상황이다.
독일의 팔슈름예거와 제101 공수단의 대혈전인 카랑탕 전투!!!
카랑탕에서는 독일군과의 치열한 혈전이 벌지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후,
노르망디에서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밀리고 밀리던 전투 상황이 지속된다.
연합군은 진군 중에 독일군에 막히고,
독일군은 연합군의 함포공격에 막히고,
두 달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 미 육군대장인 패튼 장군의 제3사단이 뚫어버린다.
1944년 6/8일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카랑탕 포위를 위해 이동해야 한다.
카랑탕의 중요성은
해변에 상륙한 연합군의 전차들이 카랑탕을 통해서만 내륙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점령하지 못하면 연합군의 발이 묶인다.
즉, 주요 교차로였고, 연합군 전차들은 카랑탕 도시를 통과해야만 했다.
카랑탕 시가전이 끝난 후, 에이블 중대 하사와 윈터스의 대화가 나온다.
"쉘부르에서 북쪽 끝까지 독일군을 다 몰아냈습니다.
쉘부르에서 남쪽 끝까지는 506 연대가 다 몰아냈다."
쉘부르에서 파리로 가는 고속도로가 있다.
이 고속도로를 장악해야 한다.
카랑탕은 쉘부르에서 파리로 가는 통로에 있었다.
≪쉘부르의 우산(Les ParaPluies De Cherbourg)≫ 1964년, 카트린 드뇌브 주연의 영화로
1957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를 배경으로,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다.
정찰 임무에서 후블러를 앞장 세우거나 자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
후블러는 전쟁터에서도 늘 자원하여 앞장서는 사람이다.
원작에서는 설명이 있으나, 극 중에서는 흐름상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 영웅에 대한 경의로 깨알 같은 에피소드를 삽입했다고 한다.
1944년 6/8일, 야간 행군 중에 일어난 일화이다.
506 연대는 카랑탕으로 가기 위해 우회한다.
''이게 다 장교들이 훈련을 땡땡이친 탓이야.''
규정에는 없었던 소블의 야간 행군으로,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도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교들은 훈련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헤맨 탓이다.
(지휘관이 어둠 속에 우왕좌왕하니, 폭스 중대가 길을 잃은 것)
그래서 윈터스의 대사가 나오게 된다.
1944년 6/12일, 카랑탕 프랑스.
506 연대의 카랑탕에서의 시가전이 벌어진다.
기관총인 MG42의 총알이 마구 날아온다.
도랑으로 몸을 피하니, 이번엔 박격포가 날아든다.
도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대원들을 향해,
윈터스는 욕을 하고 발길질을 하며, 급기야 헬멧을 벗고 도로 한 복판에 서서 소리친다.
단 한 번의 가혹 행위도 없었던 윈터스였지만, 대원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진격해야 했다.
(남쪽) 페리어 방향으로 T자를 향하는 도로를 따라서 카랑탕을 공격한다.
506 연대의 공격으로 점차 도시를 장악해 간다.
이때, 독일의 포병부대가 포탄을 퍼붓기 시작한다.
격렬해지는 폭격과 전투는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프랑스 민간인들의 피해를 낳는다.
포탄이 터지는 전투현장을 누비며,
도움이 필요한 병사들에게 종부 성사를 집전하는 존 말로니 종군신부(육군 중령).
은성 무공훈장을 받았다. 병사들은 천상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카랑탕 도시를 점령 후
독일군의 반격에 대비하여 동쪽 진지에 방어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실제, 506 연대는 카랑탕 서쪽에서 더 빌(Douville) 마을 인근 남쪽으로 향해 갔다.
이 주변은 전투 후에 'Bloody Gulch'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6/12-13일 밤을 지나면서,
더빌에서는 독일 17 SS기갑사단과 팔슈름예거 부대의 강력한 공격이 시작된다.
이동 중이었던 506부대는 전투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공격을 받았다.
506 연대는 카랑탕을 지키며, 카랑탕 남쪽에 방어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
1944년 6월 13일
불과 5시간여 만인 새벽, 독일군은 각종 장갑차와 돌격호로 진격했다.
강력한 화력 앞에 D중대와 F중대는 전투 직후, 퇴각한다.
이지중대는 전투를 계속한다.
D중대와 F중대의 몇몇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 전투를 계속했다고 한다.
윈터스는 박격포로 독일군의 포를 무력화시켰다. (극 중에서는 해리로 그려진다.)
이것이 '기사회생'의 큰 전환점이 된다.
오후 2시.
제2기갑 사단의 셔먼이 전차 증원군으로 도착한다.
셔먼을 보고 눈물을 흘린 만큼 기뻐했다.
D-데이 경과 25일,
유타 해변에 있는 임시 주둔지
블라이스는 실제로는 죽지 않았다.
82 공수사단으로 전출을 갔고, 중사로 진급한다.
뛰어난 능력으로 표창을 받았다. 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연락이 닿지 않자,
전사가로 그려졌다.
그러나 블라이스 아들의 노력으로 그간의 상황이 전해지게 된다.
앨런은 '털기의 달인'이다.
전사자의 배낭을 모아 놓는 장소에서 많은 물건을 챙겼다고 한다.
배낭에서는 전사자가 지녔던 아기신발이 나오기도 했다. 흐억 ㅠㅠ.
전리품으로 가져온 사이드를 숨겨 두기도 했고, 윈터스의 승인하에 영국으로 가져온다.
히틀러의 앨범을 챙긴 인물이다.
극 중에서는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중대는 영국으로 가서, 10일간의 휴가와 휴식기간을 가졌다.
휴가기간 동안,
윈터스는 카랑탕 시가전에서 부상당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5일간 입원했다고 한다.
4. Replacements 보충병
배경 : 1944년 9/13, 영국 알드본
(1943년 말 ~ 1944년 중반까지 알드본에 기반을 둔다.
같은 해 6월 노르망디 작전과 9월 마켓 가든 작전을 준비한다.)
1994년 9/17, 네덜란드(Holland) → Nuenen 마을
소재 : 마켓 가든 작전 : 네덜란드 에인트호벤
1994년 9/13 영국, 알드본
윈터스의 브리핑이 시작된다.
"작전명은 마켓 가든이다. 공수 병역만 따지면 노르망디 보다도 규모가 크다.
우린 네덜란드 깊숙이 침투한다.
연합군의 작전 목표는 아인트호벤과 아른헴간 도로를 확보해서
영국군 2개 기갑사단을 아른헴에 들여보내는 데 있다.
506중대는 아이트호벤을 해방시키고, 거기 남아서 기갑부대를 기다린다."
닉슨의 브리핑이 이어진다.
"이 작전은 몽고메리가 기획했다.
탱크들이 라인강 건너 독일로 진격해서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
주간에 강하하는데 저항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독일군은 대개 애들 아니면 노인들이라고 한다."
전쟁을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내겠다는 연합군의 오만이 낳은 참극이다.
2차 대전 중 승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작전이다.
공수부대가 투입된 마켓 작전과,
지상 부대의 진격인 가든 작전이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두 작전명을 합쳐서
'마켓 가든 작전'이라 한다.
마켓 가든 작전의 실수는 ① 운하와 하천이 많았던 네덜란드의 도로 사정을 무시한 결과이다.
좁은 둑길로써 사방이 노출된 지형이다.
여러 개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② 없을 거라는 정보와는 달리, 독일 기갑부대가 잔뜩 있다.
③ 팔슈름예거를 비롯한, 독일군 최정예부대가 포진해 있다.
작전은 1차로 공수부대를 뿌리고, 2차로 전차부대가 공수부대를 구출한다.
몽고메리가 주도한 작전이었기 때문에. 영국의 레드 데블스가 주공격을 맡고,
미국의 101 공수사단은 지원만 했다.
그 결과, 101부대만 살아남았다.
베를린 점령 위한 ‘마켓 가든 작전’(1944년 9/17 - 9/25)
역사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한 후 연합군은 본격적으로 독일 공격을 시작했다.
8월에는 파리를 수복했고 전 전선에 걸쳐 독일군을 압박하며
미군과 영국군이 베를린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세워진 작전이 마켓가든 작전이다.
마켓가든 작전은 미국의 패튼 장군보다
먼저 베를린을 점령하겠다는 몽고메리의 조급한 욕심이 만든 실패작이다.
‘마켓가든 작전’에서 ‘마켓(Market)’은
공수사단(미국 제82공수사단, 101 공수사단, 영국 제1공수사단)을,
가든(Garden)은 독일 본토로 진격할 기갑부대(영국 제30군단)를 뜻한다.
작전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독일군이 벨기에를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집결해 있으니
네덜란드로 병력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벤(미 제1공수사단)-네이메헌(미 제82공수사단)-아른헴(영 제1공수사단)
세 지역에 공수부대를 투하시키고
세 지역과 연결된 7개의 교량을 확보하면,
영국 제30군단 2만 대의 차량이 진격해 네덜란드를 해방시킬 수 있다.
여세를 몰아 독일 본토를 공격하면 올해 안에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작전이 성공하면 장병들을 크리스마스 이전에 고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청사진에 따라
3만 5천 명 이상의 공수부대와 약 4천대의 공중 수송기, 약 1천500대의 전투기가 동원됐다.
몽고메리 장군은 기습적인 공정 작전을 통해
라인 강의 교량에 대한 교두보를 확보한 다음
영국의 기갑 군단을 진격시켜 이들과 합류시킬 계획이었다.
1944년 9월 17일, 영국군 1 공수사단, 미군 82·101 공수사단의 1만 9천여 병력이
네덜란드 에인트호벤에서 아른헴에 이르는 지역에 강하하면서 작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초반부터 예기치 않은 난관에 부딪친다.
101 공수사단 지역에서는 독일군 교량 하나를 폭파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
82 공수사단은 강한 저항에 부딪쳐 네이메헌의 교량을 점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번째 요인이 날씨이다.
낙하 장비가 엄청나게 발달한 현재도 공수작전에는 상층 바람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마켓 가든’ 작전에서는 상층 바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날 강한 상층 바람이 불면서 계획했던 지역에 정확히 투하된 공정부대가 거의 없었다.
특히 가장 동쪽의 아른헴에 투하됐던 영국 부대는
강한 상층풍으로 인해,
교량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투하됐고 고립되면서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또 작전의 성공을 위해 공군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으나
계속되는 나쁜 날씨로 공중지원은 불가능해졌고,
결국 영국의 연합군 기갑사단이 독일의 무장 친위 기갑사단에 밀리게 되는 원인이 됐다.
마지막으로 보급품의 공중투하에서도 날씨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투하된 보급품 390톤 중 31톤 만이 연합군 손에 들어갈 정도로
바람을 전혀 이용하지 못한 보급 작전이 패배의 한 원인이 됐다.
1944년 9/17, 네덜란드(Holland)
요약본 : 《마켓 가든 작전》은
에인트호번(Eindhoven)과 네이메헌(Nijmtgen), 아른헴(Arnhem)을 연결하는
세 지역에 놓인 도로, 7개의 교량 및 거점도시를 점령하여
단숨에 독일 본토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추진한다.
적진 100Km 거점에 위치한
독일과 네덜란드 국경의 소도시 아른헴의 고량은 라인강에 걸려있고,
이 다리를 통과하면 독일 본토와 연결되어
독일 군수산업의 핵심 루르 공업지대를 공략할 수 있다.
마켓 작전에 따라, 연합군은 대규모 공수부대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101 공수사단은 에인트호벤에 투입된다.
에인트호벤까지 무사히 진격하고, 네덜란드인들의 환호를 받는다.
다음은 독일로 이어진 아른헴 교량을 확보하러 간다.
네덜란드 저항군의 도움으로 교량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게 된다.
영국 제1 공수사단이 강하한
아른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누엔(Nuenen) 마을을 통과해서 가는 것이다.
Nuenen(고흐가 살았던 곳) 마을.
누엔에는 이미 약명 높은 타이커, 야크트판더,..
강력한 화력을 뿜어대는 독일의 무장 친위 기갑사단이 매복해 있었다.
순식간에 전차 4대가 격파되고, 2대는 후퇴한다.
학살의 최고봉인 타이거를 상대하기엔 셔먼과 크롬웰은 연약하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최초의 후퇴가 그려진다.
제 101공수사단 506연대 그중에서도
이지 중대는 작전 도중 180명의 병사를 잃고, 560명의 부상자를 냈다.
제 101공수부대는 아른헴에서 750명의 병사를 잃고 2만 1000명의 부상자를 냈다.
랜들먼은 사병 출신으로, 초반에는 이지중대 중대원으로 활약한다.
이후에 하사관으로 임명되고 분대장으로 활약한다.
윈터스 소령이 뽑았던, 연대 최고의 병사 중 한 명인 랜들먼.
'불'은 덩치가 커서 붙여진 별명이다.
백병전 최고의 전사이다.
그가 마켓 작전에서 부상을 입고 낙오된다.
백병전으로 독일군을 제압한 후, 부대로 복귀한다.
병사들이 자진해서 낙오된 랜들먼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했다고 하니,
'보충병의 어머니'로 불릴 만한 일화이다.
또 다른 실화로, 노르망디 강하 직후에 백병전으로 독일군을 사살한다.
단점은 투덜거림이 심하다. 아는 게 많아서...
"새파랗게 어린, 동생 같은 아이들이 죽어나게는 게 싫었어,
그래서 정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 같아." 신병들을 회상하는 선임병의 말이다.
제임스 맥어보이가 신병으로, 랜들먼의 부대원으로 온다.
5. Crossroads 교차로
배경 : 1944년 10/17 슌 데르고 그 트(Schoonderlogt Holland) 네덜란드이다.
윈터스의 회상 장면으로 1944년 10/4-5일의 전투 장면이 그려진다.
→ 1944년 10/31 Driel, Holland → 1944년 12/10, Mourmelon-le-Grand, France
→ 1944년 12/18 바스토뉴, 벨기에
영국의 마켓 가든 작전은 대실패로 끝이 났다.
레드 데블스는 2천 명이 살아 돌아오고, 8천여 명이 전사한다.
'페가수스 작전'은 아른헴에 강하했다가,
고립된 영국군 공수부대를 구조하기 위한 작전이다.
페가수스 작전은 도비 중령이 주도한다.
네덜란드 저항군들이 영국 대원 140명을 강 건너, 독일군 마을 근처에 숨겨주고 있다.
이지중대에서 구조팀을 선발하여, 강을 건너서 구조해 오는 임무를 수행한다.
캐나다 공병대가 보트 6척을 지원한다.
무스 하이리거 중위는 페가수스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실제로 안헴에 고립되었던 연합군의 일부는,
네덜란드 저항군의 도움으로 조금씩 구출되었다.
영국군은 독일군을 은어로 요강 통이라는 뜻의 '제리'라고 부른다.
미군은 독일군을 독일의 '양배추' 절임인 크라우츠라고 부른다.
윈터스의 리더십
1944년 10/4-5일
네덜란드 아른헴에서 남서쪽으로 약 11Km 떨어진 랜드 위크(Randwijk) 근처.
랜드 위크 지역을 정찰하던 중에, 독일군이 기관총을 설치하는 것을 보게 된다.
독일군의 모습에 리브갓은 이지 중대원으로 착각해서 소리쳤고,
정찰대원 한 명이 독일군 수류탄 공격으로 부상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회상씬!
윈터스의 회상으로 보이는 1944년 10/4-5일의 전투 장면은 윈터스의 지휘력을 보여준다.
ㅇ2개 소대로 2개 중대를 소탕한다.
일명 '히틀러의 전기톱'으로 불리는 독일군의 MG42를 보고 나서,
전투원 각자 각자에 임무를 부여하고 공격을 지시한다.
후퇴 저지선을 만들고, 박격포를 놓고, 돌진해서 치고 빠지고,
결국 개활지에 빠진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전멸 상황이다.
아른헴 다리의 남쪽과 가까운 개활지는 보통 습지로 간주되는데,
실제로 착검을 지시하고 돌격할 때 땅이 질펀하고 말랑했다고 한다.
윈터스가 대단한 지휘관이라는 것은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리며,
즉석에서 전략을 짜고 실행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윈터스는 공격을 지시한다.
윈터스 이하 병사들도 베테랑임을 보여주는 전투씬!
모든 전시상황 가운데,
윈터스는 이 날의 전투에서 이지 중대원들에게 "최고의 활약상"을 수여했다. ㅎㅎ
ㅇ리더는 앞장서야 한다.
ㅇ리더는 부하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바와 생각하는 바를 공감해야 한다.
ㅇ항상 옳은 판단으로 이끌어야 한다.
탈버트와 윈터스는 독일군이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MG45를 쏘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
그 해답은 10/5일 새벽 윈터스가 친위대 2개 중대를 공격하는 시간에
국민척함병사단이 오페 우스텐(Opheensden, holland)을 공격하여 3대대가 곤혹을 치렀다.
독일군이 2대대 지휘소를 칠 때, 호튼 소령이 방어병력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1944년 10/31 Driel, Holland
2대대 부대대장인 호튼 소령이 전사함에 따라, 위터스는 2대대 부대대장으로 임명된다.
윈터스의 후임으로는 이지중대 중대장으로 무스 하일 리거가 온다.
무스는 성실하며 책임감이 강한 능력 있는 지휘관이다.
페가수스 작전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불행히도, 초병의 총에 3발을 맞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 초병은 신병이었고, 윈터스는 처벌 대신
병사들에게 맞아 죽을 것을 생각하여 바로 전출 보냈다고 한다.
아파하는 무스에게 해리(장교)가 모르핀을 2-3대 놓는다.
그리스 신화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의 이름에서 유래된 모르핀(Morphine).
신화처럼, 무스는 꿈나라로 갈 뻔한다.
윈터스는 무스의 낯빛을 보면서, 그의 생사를 걱정했다고 한다.
무스는 총상 후, 한 달 뒤에 대위로 진급한다.
윈터스에게 안부 편지를 보낼 만큼 회복되었다.
회복 후에는 미 본토의 이지중대로 복귀한다.
의무병 유진은 장교들에게 크게 호통친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 기술상병 (T) 마크가 붙은 계급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그 분야에 있어서는 아무도 통제권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한다.
1994년 12/10일, Mourmelon-le-Grand(모우 멜론), France
윈터스의 파리 휴가 장면은,
그가 최고의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비극적 상황에서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모우 멜론(Mourmelon-le-Grand, France) 캠프이다.
101 공수사단의 육군기지로 사용 중이다.
마켓 가든전투의 상처를 회복하고, 재충전을 한다.
다가올 전투를 대비해서 새로운 보충병을 맞고, 훈련시킨다.
영화는 Mariene Dictrich, John Wayne 주연의 Seven Sinners, 1940
영화를 보는 동안, 윈터스의 물음에 넋이 나간 듯한 벅을 볼 수 있는데
마켓가든 작전에서 부상을 당한 후, 치료를 하고 복귀를 했다.
야전병원에서 겪게 된 생사의 긴박함과 끔찍함에 힘들어했고,
그 후로는 예전의 '벅'의 모습은 볼 수 었었다고 한다.
벌지 전투(Battle of the Bulge) = 아르덴 공세(Ardennes Offensive)
= 바스토뉴 공방전(Bastogne)
1994년, 독일군은 승리가 확실시되는 연합군을 압박한다.
동쪽으로 진격하던 연합군의 고민은 보급이다.
마켓 가든 작전의 실패로 보급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진격을 잠시 멈춘다.
이에 독일군은 양쪽 합쳐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벌지 전투'를 벌인다.
아르덴 지방은 깊은 산림과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독일의 기갑부대가 쉽사리 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연합군은,
그들도 기갑부대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보병부대를 배치한다.
연합군은 신참 보병사단이었기 때문에 전투 경험이 없었다.
결국, 독일군에 항복하거나, 전멸당한다.
벌지 전투로 인해, 연합군은 포로만 4만이 잡힌다.
이런 이유로 후퇴를 한 후에, 재정비를 도모하자는 이견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101 공수사단을 바스토뉴로, 82 공수사단을 생비트로 급파한다.
1944년 12/17 - 18일
레드볼 익스프레스(Redball Express), 흑인 운전병으로 구성된 수송부대이다.
이 날 하루에만 1만 대의 차량으로, 6만 명의 병력과 각종 장비를 수송했다.
제101 공수사단도 이 트럭을 타고 이동한다.
1944년 12/18일, 벨기에의 바스토뉴.
도로 7개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독일 전차들도 바스토뉴를 거쳐야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
윈터스의 2대대는 숲이 우거진 동쪽을 방어해야 한다.
이지중대는 포이 남쪽의 바스토뉴에서 노빌까지의 도로를 방어하고 있다.
노빌은 바스토뉴에서 북쪽으로 3마일 떨어진 평평한 농경지로 둘러싸인 곳이다.
남쪽으로 1마일 떨어진 곳에는 (바스토뉴를 둘러싼 숲 가장자리에) 포이 마을이 있다.
동계 피복도 부족하고, 탄약과 음식도 부족한 채로 전투에 참가해야 한다.
넋이 나간 듯이 후퇴하는 연합군 가운데서도,
자신의 의무와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는 사람은 있다.
바로 제10 기갑 사단의 '조지 라이스 소위'이다.
그는 101 공수부대를 위해,
독일군의 병력과 현재 상황을 알려주고, 부족하기만 했던 탄약도 전해준다.
그는 지미 팰런이었어.
6. Bastogne 바스토뉴
독일은 남은 전차와 병력을 대거 모아 아르덴 숲을 공격한다.
이곳은 겨울이 되면 짙은 안개가 끼여, 공중보급을 어렵게 했다.
지급되더라도, 보급품이 독일군 진영으로 떨어졌다.
공군력에서 현저하게 밀리던 독일로서는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사이로, 독일 정예 기갑사단은 파죽지세로 공격해 온다.
기갑 전력은 독일군 전체의 2/3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최정예부대를 배치했다.
독일군은 제101 공수단과 10 기갑사단을 바스토뉴에 완전히 포위해 버린다.
1944년 12/20일
안개와 엄청난 추위 속에,
포이(Foy) 남쪽의 바스토뉴(Bastogne)-노빌(Noville) 간의 도로를 방어한다.
노빌은 바스토뉴에서 북쪽으로 3마일 떨어진, 평평한 농경지로 둘러싸인 곳이다.
남쪽으로 1마일 떨어진 곳에는 바스토뉴를 둘러싼 숲 가장자리에 포이 마을이 있다.
제506부대의 일부는 노빌 마을에서 북동쪽을 방어하는데 투입된다.
독일군은 노빌에서 포이에 이르는 도로를 차단한다.
노빌에 있던 제506부대에 포이로의 철수 명령이 전달된다.
제506부대의 나머지 대대가 포이에서 엄호하는 가운데 철수가 진행된다.
1944년 12/21일
독일군은 상대적으로 방어가 취약했던 바스토뉴 서쪽을 집중 공격했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제101 공수사단은 바스토뉴에 완전히 포위되어 버린다.
1944년 12/22일.
제101사단의 대리 준장인 맥클리프 장군에게 전달된
독일군의 항복 권고에 대해, Nuts!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소개된다.
1944년 12/23일.
일시적으로 안개가 걷히고, 연합군의 공중폭격과 공중보급이 개시된다.
제101 공수사단이 바스토뉴에 투입된 지 약 5일 만이다.
1944년 12/26일.
미 육군 대장인 패튼의 제3사단은 바스토뉴를 구원하기 위해 전투를 계속했다.
미 제4기갑사단이 바스토뉴에 도달하여 포위를 깨뜨렸고, 독일군은 퇴각한다.
101사단은 엄청난 추위와 보급 난에 시달린다.
미군 공중 보급품이 대부분 독일군에게로 떨어진다.
발지 전투가 초반에 열세를 보인 이유는,
안개로 인해 연합군 공군이 출격하지 못하게 되면서 제공권의 상실에 있다.
화면 가득히 보이는 눈은 종이를 갈아서 뿌린 것이라고 한다.
해리의 이마에 유진이 피로 'M'자를 쓴다.
이는 모르핀을 투여했다는 의미로, 약물 과다 투여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투여한 후,
빈 모르핀 시레트를 부상자의 재킷 앞에 핀으로 꽂았다.
'유진'을 보면서, 위생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위생병은 체구가 좋은 사람이 1차로 차출된다.
유진은 최전선에서 부대의 엄마 역할을 한다.
동료들을 위해 상당히 헌신하는 인물이다.
어느샌가 와 있고, 가장 먼저 달려와 부상병 곁을 지켰다.
노르망디 작전부터 카랑탕, 마켓 가든 전투에도 참여한다.
마켓가든 전투에서 다리 부상을 입고, 이지중대를 잠시 떠난 후,
치료 후에 바로 복귀한다.
종횡무진 유진은 후방에 있는 야전병원을 오가며, 활약한다.
부상병들을 위한 수액이 얼지 않도록 항상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고 한다.
유진을 통해 '포위'된 상황을 보여준다.
보급물자의 태부족과 혹독한 추위와의 싸움, 독일군에 의해 둘러싸인 상황을 나타낸다.
6화는 가장 드라마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다.
극 중 이름이 안나로 불리는 콩코 출신 벨기에 간호사인 오귀스타 시위.
1944년 12월 나치에 포위당한 바스토뉴에 자원해서 전장으로 간다.
독일의 포격으로 사망한 줄 알았지만,
오랜 추적 끝에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고,
벌지 전투가 발발하고 67년이 지나서야 미국으로부터 시민상을 받았다.
르네 르메르(Renee Lemaire) 역시 실존인물이다.
제10 기갑사단 의무대에서 근무를 했다.
한 병사가 르네에게 실크로 된 낙하산 천을 주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인 1944년 12/24일에 나치의 집중포화에
미군 병사 30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당시 23세였다.
그 낙하산으로 그네의 시체를 감쌌다고 한다.
3화에서 닉슨이 해리에게 예비 낙하산을 왜 짊어지고 다니는지 묻는다.
해리는 실크니까,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입을 수 있게 여자 친구에게 줄 것이라 말한다.
종전이 되고, 낙하산은 웨딩드레스가 되었다고 한다.
바스토뉴 전투는 제101사단의 전투 중에 가장 큰 전투였다.
7. The Breaking Point 한계점
배경 : 1945년 1/2일 벨기에,
아르덴 숲(포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숲 속 방어 진지 → 포이 마을의 부아 자크 숲)
1/3일 오후,
포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숲 속 방어 진지로 돌아가면서
소수의 인원을 부아 자크 숲에 남겨,
주 저항선을 담당하는 도그 중대에 배속시켰다.
1/3일 늦은 오후,
대부분의 이지 중대원은 포이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숲 속 방어 진지로 돌아왔다.
-----> 포이 숲 속 방어 진지를 나와서, 포이 마을로 진격한다.
→ 포이 마을 점령 → 노빌 점령 → 라샹 수녀원 → 아그노
바스토뉴 사수 후, 이지중대는 독일군을 밀어내기 위한 작전에 다시 투입된다.
연합군은 바스토뉴 북동쪽 포이 마을을 공격할 예정이었는데,
사전에 포이 마을의 부아 자크(Bois Jacques) 숲을 확보하는 것이 임무였다.
참전자들의 인터뷰가 아프게 시작한다.
「전투피로증」 잠깐의 휴가 후에, 100일 이상을 야전에서 전투해오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해를 행할 만큼, 심각한 전투 피로증을 앓았다.
전장을 떠날 수만 있다면, 회복불능의 부상도 반길 만큼 아주 괴로운 상황이었다.
''우리 부대는 자해로 이탈한 인원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윈터스는 자랑했다.
제101 공수사단은
노르망디에서 23일, 네덜란드에서 78일, 벨기에 15일.
7화, 바스토뉴에서 5일째 전투가 지속되고 있다.
독일군의 '루거'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루거를 획득한 후블러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기나긴 전쟁과 잔인한 추위가 계속된다.
윈스터도 벌벌 떤다.
토이는 용감하며, 터프했다.
부상으로 인해 4번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부상당한 몸으로도 전투에 참가할 정도로 전우애가 깊다.
벅과 가니어와 절친이다.
'포이의 숲' 전투에서 독일군 포탄에 다리를 잃게 되지만,
그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노력한다.
먼 훗날, 토이의 장례식에서는 리처드 윈터스가 존경의 의미로 추모사를 전한다.
이지 중대원들 사이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영웅으로 대접받았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독일군의 88mm 대공포 공격이 날아든다.
미친 듯이 퍼붓는 독일군의 포격.
이지 중대의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다.
포격으로, 숲의 나무들이 쪼개지면서 참호를 덮친다.
이로 인해, 2차 피해까지 입게 되는 상황이다.
쓰러진 나무들에 깔리고, 찢어진 나무에 찔려서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 참호를 파내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방공호처럼 덮는 방식을 취해야 했고,
후에는 지붕처럼 꽁꽁 언 시체로 덮기도 했다.
벅은 노르망디 작전 직전에 합류한 이지중대 2소대 지휘관이다.
매우 유능한 전투지휘 장교로 평가받는다.
계급을 떠나 병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병사들도 잘 따른다.
포격으로 인해, 토이와 가니어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본 벅은 큰 충격을 받는다.
언제나 병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벅'이 트라우마로 진영을 떠났을 때도,
모두들 벅을 이해하고, 후에도 병사들과 함께한다.
유달리 병사들과 가까웠던 벅. 그랬기에 벅에겐 더더욱 큰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윈터스는 ''사병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좋은데, 너무 친하게 지내지는 마라''.라고 말했다
벅은 그들의 죽음에 무너졌고,
"장교로서 지나친 감정이입은 업무적으로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작에도 수많은 장교가 이지중대를 거쳐갔다고 한다.
그러나, 어지간한 장교가 아니고서는
전투의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베테랑 병사들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피콕'은 자기주장이 없다. 답답한 인물이다.
노르망디 강하 전에,
마틴 하사에게 ''녹색 등이 들어오면 내 다리를 툭 치기만 하면 되잖아.''라고 한 이유는
대대 보급장교로 있다가 부임했기 때문에 전투 경험이 없었다.
성실했지만, 능력이 없었다.
전투 상황에서 무능력은 독이다.
"피콕은 빨리 휴가 가라."
포이 숲 속 방어 진지를 나와서, 포이(Foy) 마을로 건너가야 한다.
폴리 중위는 제대로 능력 있는 지휘관이다.
결국, 다이크에게 포이 마을로 진격하라는 임무가 떨어지지만,
사고 정지 즉, 멘붕상태가 된다.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장교이다.
"다이크는 안 와도 좋다."
병사들과 함께 하지 않고, 항상 어딘가로 사라진다.
병사들의 신뢰를 잃어버렸고, 윈터스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결국, 다이크의 무능력함이 불러온 참사는 1/3의 전사자를 낳는다.
원래는 전멸할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독일군이 마을에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윈터스는 자서전에서 다이크의 무능함을 기술하는데,
그 이유는 '포이 마을 진격작전'에서
사망한 토코아 출신 부사관(처음부터 함께한 똘똘 뭉친 전우애)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투 지휘관으로서는 낙제였지만, 사단 본부로 전출한 후에는 행정장교로서 재능을 발휘했다.
실제로, 훈장도 받았다.
무능력, 무기력에 빠진 다이크를 보다 못한 윈터스가 뛰쳐나가려 하지만...
사실은 뛰어나오다가 혼자 돌아간 것이다.
히어로의 등장!
주연 : 스피어스
별명 : 피의 스피어스, 미스터리
용맹한 지휘관으로, D-데이 때 도그 중대를 이끈다.
빈약한 다이크의 지휘력으로 이지 중대가 위험에 처하자,
윈터스는 직권으로 스피어스를 불러 그 자리에서 이지중대 중대장으로 임명한다.
실제로는 윈터스의 옆에 스피어스가 있어서 부른 거라고 했다.
그 당시 스피어스가 아닌, 다른 장교가 있었다면 그 장교를 불렀을 거라고 했다.
독일군 진지 한 복판을 가로질러 가는 모습과 상처 없이 한 번 더 가로질러오는 모습은
용감함과 무모함을 잘 보여준다.
그의 무모함과 용맹함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는데,
2화에서 D-데이 다음날,
브레쿠르 마뇨르 전투에서 윈터스가 포대를 접수하던 중에
스피어스가 105mm 곡사포를 무력화하는 것을 도왔다.
마지막 포대를 스피어스가 이끄는 도그 중대가 접수하던 중에
스피어스가 참호 밖으로 뛰쳐나가 포대로 돌격한다.
그를 따르던 과정에서 3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뛰어서, 저격범을 제거하려는 립튼이 그려진다.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할 일을 말해주고, 항상 지휘관의 소임을 다한 립튼.
다이크의 책임감 결여와 선택 장애로 인해, 스피어스로 중대장이 바뀌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립튼이 부대 지휘관이다.
이는 스피어스도 인정한다.
현지 임관되는 립튼을 장교로 대우해 준다.
이 당시에는 행정적인 문제로 인해, 정식 소위가 아닌 비공식적으로 장교 대우를 받았고,
정식 소위는 8화 프랑스 헤게 나우에서 임관한다.
10화에서 나치의 고향인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을 점령한다.
이때, 립튼은 포르셰의 창업자 페르디난트 포르셰와 친분을 맺는다.
벨기에로 들어올 때,
이지 중대원들은 장교를 포함하여 121명, 보충병 24명으로 모두 145명이었지만,
포이를 거치면서, 63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제101 공수사단 중에서도 506부대가 제일 사상률이 높았고,
그중에서도 이지 중대는 제일 인명피해가 컸다.
늘 선봉에 섰던 부대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라샹 수녀원에서 하룻밤을 묶었다.
꼬박 한 달만에 실내에서 잠을 청한다. 정말 고되다.
알자스에서 히틀러가 반격을 시도하는 바람에,
아그노로 전선을 지원하기 위해 출발해야 한다.
8. The Last Patrol 마지막 정찰
배경 : 1945년 2/9일, 프랑스 헤게 나우
Strasbourg 북쪽과 프랑스 알자스 마을 하게나우에 입성한다.
헤게 나우는 알자스 지방에 있는 라인강의 지류 moder강에 접한 곳이다.
장면은 웹스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101 공수사단은 벌지 전투에서 바스토뉴를 사수해 유명해졌다.
덕분에 바스토뉴에서 박살난 악바리라는 별명까지 얻었는데, 그 지옥 같은 숲에 비해
이곳 피랑스 알자스 지방은 낙원 같은 곳이었지만
여기서도 이지 중대를 맞이하는 것은 강 건너에서 들려오는 포성이었다.
나는 부상 때문에 바스토뉴는 건너뛰고
알자스의 아그노로 가는 길목에서 중대에 복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만난 이지 중대원들은
영웅들이라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딱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중대장이 바뀐 이지 중대는 온통 낯선 얼굴들이었다.
토코아 출신들도 전과 같지 않았고, 완전히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나는 중대 창설 동기로 노르망디는 물론 마켓 가든 때도 함께 싸웠다.
그러나 바스토뉴에 없었다는 이유로 이제는 모두 나를 신병 대하듯 했다.≫
웹스터는 하버드 출신이지만 동료들과 위화감 없이 잘 지낸다.
정찰이 아닌 관측 임무를 수행했고, 8화는 웹스터가 기록한 이야기다.
시가전이 아니다.
라인강 지류를 사이로 미군과 독일군이 마주 보며, 대치하는 상황이다.
양측 진영 모두 관측소를 건물에 둔다.
총으로 저격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포로 공격한다.
주간에는 저격수, 박격포, 88mm의 대공포, 열차포로.
야간에는 조명탄과 박격포가 날아든다.
바스토뉴에서 비 오듯, 쏟아지던 폭격을 겪어낸 대원들은
포가 날아들 때는 큰 요동함 없이, 신속히 지하로 대피한다.
멀라키는 독일군의 루거를 구하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달려 나가고,
독일군 포로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건넨다.
그러나 전투가 지속될수록, 밝은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도 그럴 것이,
친하게 지냈던 벅과 전우들이 떠나가는 모습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항상 선봉에 서 있던 이지 중대원 중에서도, 늘 앞장섰다.
계속되는 전투로 피로도가 극에 달했다.
강 건너, 독일군 전초기지 정찰에 앞서,
마틴 하사가
"소리 나는 장비나, 반짝거리는 건 착용하지 말라. 철모도 벗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쉬프티가 M1 소총 가늠쇠를 라이터로 그을리고 있다.
가늠쇠는 자체 발광하기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빛이 난다.
실제 M1소총 교본에도 나와 있는,
'야간 전투 시 가늠쇠를 그을리기'가 드라마 장면으로 보여준다.
강 건너,
1차 수색 후 신병 잭슨이 죽고, 포로 2명을 잡아 온다.
또다시 2차 수색 명령이 떨어진다.
실질적인 공과가 없는 수색으로 아까운 생명만 잃은 상황에서
윈터스는 수색 작전을 취소하고
포로를 잡지 못했다는 거짓 보고를 하게 한다.
그 순간, 존슨은 리더십을 목도한다.
2월 초에서 3월 말까지 서부전선의 연합군이 라인강에서 독일군과 대치하는 상황이다.
휴식 후, 3월말 라인강을 건너 독일로 진입한다.
9. Why We Fight 우리가 싸우는 이유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각자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전쟁 당시에는 적으로 만났지만,
종전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됐을 때는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프랑스 모우 멜론에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후, 독일로 향한다.
배경 : 1954년 4/11일,
독일의 탈렘(종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다)
→ (회상)한 달전, 독일의 슈튀르젤베르크 (Sturzelberg) → 바이에른 알프스
♬ String Quartet No.14 in C minor, Op131, Beethoven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된 독일 시가지.
독일인들은 전쟁의 잔해를 치우고 복구하는데 힘쓴다.
병사들은 그런 독일인들에게 호감을 느낀다.
1945년 연합군 총사령관들이 자국군에 강조한 'non-fraternization' 정책은
독일 민간인과 대화를 금지하고, 친밀한 사귐을 할 수 없다.
또, 정책에는 독일 남성과의 악수 금지까지 포함되어있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정책'이란 미명 하에 통제되어질 수 있는 걸까?
강경책이 실효성을 거두진 못했다.
약탈의 귀재 스피어스.
승리자의 특권인 냥 전리품들은 살뜰히도 챙긴다.
멀라키는 인터뷰에서 스피어스는 최고의 약탈자였다고 회고했다.
스피어스는 영국인 미망인과 결혼했다.
부인이 전사했다고 생각한 전남편이 살아 돌아오면서 재결합했고, 스피어스와 헤어진다.
열심히 전리품을 보냈건만...
그 당시 영국은 종전 후에도 배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되는 물건을 악착같이 보낸 것이다.
하지만, 후에 윈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녀는 미망인이 아니고,
영국인 여자 친구가 자신을 따라 미국으로 가기를 주저해서, 결혼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모든 군은 점령지에 바로 우체국을 세운다.
병사들의 사기 진작과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통은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윈터스의 동갑내기 절친이자 전우이다.
윈터스와는 평생을 좋은 친구로 지냈다.
닉슨은 예일대 출신으로 상류층 자제이다.
엄친아, 금수저, 실물 갑, 귀티가 흘렀다고 한다
병사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정보장교로서, 인기가 좋았다.
전장의 소식이라던지, 가십거리, 연예기사,...
병사들이 알고 싶어 하는 소식을 잘 전달해 주었다.
다정하고, 신사다웠다.
정보장교였지만, 실제로 전투를 치르기도 했고, 각종 정찰 임무도 수행했다.
전쟁 후, 1956년 세 번째 결혼을 하면서 술을 끊었다.
실제로 닉슨은 아주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닉슨의 성격이 가장 크게 변화된 계기는
이혼과 17 공수사단이 참여한 '바시티 작전'으로 인함이다.
바시티 작전
1945년 3/24일, 17 공수사단과 전투 강하를 한다.
닉슨은 노르망디와 마켓 가든에도 참여했기 때문에,
전투 강하 시 주어지는 공수 기장이
사단 내에서도 몇 명 되지 않는 별 3개가 된다.
바시티 작전은
전쟁 말기에 1만 6천 명의 강하병과 1700대의 항공기를 동원한
역사상, 하루에 한 곳으로 가장 많은 부대를 투입한 큰 공수작전이다.
웨스트포인트에서는 '공수작전의 교과서'라 교육하는 작전이다.
이 작전에서 자신이 강하하자마자, 수송기는 대공포를 맞고 격추된다.
닉슨이 탔던, 수송기의 생존자는 2명이었다.
죽을 때까지 전쟁의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닉슨.
피칸테가 읽고 있는 책은 ≪A tree Grows in Brooklyn, 1943≫
우리말로는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로 Betty Smith의 자전소설이다.
가난하지만 열망이 강한 10대 소녀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1945년 4/12일 루스벨트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다.
루스벨트의 네 아들은 모두 참전용사이고, 막내를 1차대전에서 잃었다.
장남 루즈벨트 주니어는 1차에 이어서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한다.
노르망디 작전에 투입된 초고령 병사이자, 최고위 장성이었다.
작전이 있은 한 달 후, 심장마비로 전선에서 숨을 거둔다.
함께 작전에 참가한 그의 셋째 아들 쿠엔틴 대위가 임종을 지켰다고 한다.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분열을 기대하며 희망을 품기도 했다고 한다.
1945년 4/22일, 독일 바이에른 알프스로 간다.
가는 중에 대원들이 군가를 부른다.
♪♬ 낙하산 줄에 묻은 피(Blood upon the Risers) - Gory Gory what a Helluva Why to Die~는
Julia Ward Ho의 공화국 전투 찬가(The Battle Hymn of the Republic)를 개사한 곡이다.
신참병이 강하 수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실감 나는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내용은 끔찍한데 병사들은 즐겁게 부른다.
기존 노래를 짓궂게 개사해서 부르는 건 만국 공통인가 보다.
1945년 4/29일, near Landsberg.
숲을 정찰하던 이지 중대원들이 유대인 노동 수용소(The Nazi Labor Camp)를 발견하게 된다.
리브갓은 모든 전투에 참전하였지만, 단 한 번도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
다혈질적인 성격이지만, 동료들을 많이 애정 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3화 카랑탕에서 독일군의 로켓포에 맞은 티퍼 이병을 보듬어 진정시켜준다.
동료들을 잃은 벅을 찾아가 다독여준다.
유창하게 독일어를 구사했기 때문에, 통역병으로 활약한다.
어머니가 유대인인 리브갓에게 수용소는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을 안겨준다.
종전 후, 유대인 수용소에서 윈터스의 말을 통역하는 일을 괴로워했다.
유대인 수용소와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가 즉결 처형해 버린다.
1945년 4/30일, 히틀러는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1945년 5/2일, 베를린이 함락된다.
1945년 5/8일, 유럽 전승기념일(Victory in Europe Day. VE Day)
10. Points 제대 점수
배경 : 전쟁이 끝난 1945년 7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주의 첼암제(Zell Am See)
1945년 5월 초, 독일 남주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 바이에른주의 한 도시)을 점령하기 위해
바이에른 지역으로 진격
종전을 묘사한 듯한, 평화롭고 고요한 윈터스의 수영 장면이다.
윈터스에 의해 이끌려 간 그곳은, 괴링의 하우스이다.
만 병이 넘은 세계 최고의 위스키와 포도주 그리고 샴페인은 모든 중대에게 나눠준다.
물론, 닉슨의 선점 후에 말이다.
유럽에서는 전쟁이 끝이 났다.
VE-Day!
독일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간다.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집들은 멀쩡했고,
나치에 협력했던 오스트리아 병력들은 신속하게 항복했다.
85점이 채워지면 제대이다
그러나 대부분 85점을 채우지 못한다.
원작에서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두루 거친 이지 중대원이 아니면,
누가 85점을 채울까?"라며 탄식 아닌 탄식을 했다고 한다.
종전 후, 혼란한 지역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질서유지를 위해서 독일군 헌병을 남겨뒀다.
영국 보충병이 술이 취해서, 독일 장교와 영국 장교를 총으로 쏴 죽인다.
연유를 묻던 그랜트 하사의 머리에도 총을 쏜다.
이지중대 중대장이 된 스피어스는 중대원들을 많이 아꼈다.
독일 민간인 뇌수술 전문의를 직접 찾아가서, 그랜트 하사가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반면, 벅에게 한 대만 빌리겠다던 담배 한 갑을 몽땅 가져간 일화나,
피칸테의 라이터를 슬~쩍 가져가려고 한 장면을 볼 때, 참~~~ 탐심이 강하구나. 생각했다.
지휘관으로서는 탁월하나, 인격적으로는 무척 이기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윈터스가 말한다. ''소블 대위, 경례는 사람이 아니라, 계급 보고하는 거야."
딱! 마주쳤네. 내가 왜 짜릿하냐 ㅎㅎㅎ
우리는 왜 싸웠던 걸까?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승자도, 패자도 아닌 우리가 남았을 뿐이다.
"오래오래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
어린 손주가 내게 묻길,
"할아버진 전쟁 때 영웅이셨어요?"
전 말했죠.
"아니다. 나는 영웅들과 함께 싸웠을 뿐이란다."
다 끝이 났다. 고마웠네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내겐 ★특급★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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