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리더십을 가졌던 여인 뵈뵈
1. 뵈뵈는 사람들을 잘 돕는 일꾼이었습니다.
뵈뵈는 고린도 지역의 동부 해안,
지금으로 말하면 그리스의 동부 해안의 항구도시인 겐그레아 출신입니다.
뵈뵈의 이름은 그리스 신화에서 올림포스 12 신 중에 하나인 아폴론 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폴론은 빛과 태양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아폴론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매우 합리적이고 지적이며 이성적인 신입니다.
또한 시와 음악을 사랑합니다.
아폴론은 매우 세련되고 도시적인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죠.
아폴론의 별명은 포이보스(Phoibos)입니다. 남성 명사입니다.
태양의 찬란한 광채, 순수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여성 명사로 바꾸게 되면 포이베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뵈뵈라고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뵈뵈는 빛나는 여인이라는 뜻입니다.
(롬 16:1)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뵈뵈를 추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와 가깝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합니다.
다 기록한 로마서를 누군가 로마 교회에 전달해 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전달하는 일을 뵈뵈가 했다는 것입니다.
(롬 16:2)
-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뵈뵈가 사도 바울의 후원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고린도 교인에게는 이방인인 것입니다.
뵈뵈는 이방인이었던 바울을 여러 가지 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 16장 2절의 숨은 논리는
너희는 정성을 다해서 정중하게 뵈뵈를 맞이하고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급해 주어라.
왜냐하면 그녀도 여러 사람과 나에게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외국인으로 고린도 지역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뵈뵈는 외국인인 바울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습니다.
(롬 16:4)
-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재정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문제가 발생하면 뵈뵈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사람들을 돕고 섬겼습니다.
복은은 뵈뵈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확산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귀한 헌신을 통해서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2. 뵈뵈는 교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일꾼이었습니다.
(롬 16:1)
뵈뵈는 많은 사람들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던 교회의 헌신된 일꾼이었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주목해 봐야 할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의 일꾼이라는 표현입니다.
일꾼을 헬라어 혹은 그리스어로 디아코노스라고 부릅니다.
남자일 경우에 디아코노스라고 부릅니다.
헬라어는 남성에게 쓰는 명사와 여성에게 쓰는 명사가 다릅니다.
남자 : 디아코노스
여자 : 디아코네
그런데 로마서 16장 1절에서 바울은 뵈뵈를 디아코노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자매인 뵈뵈에게 남성 명사인 디아코노스를 사용하고 있는가?
여기 사용된 일꾼이라는 말은 일상적인 의미에서 노동하는 일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매우 제한적인 의미에서의 일꾼을 뜻하는 것입니다.
뵈뵈는 겐그레아 교회의 집사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집사는 아무에게나 붙이는 호칭이 아니었습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해 복음을 증거하고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면서
교인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을 교회의 집사로 세워서 그들이 마음껏 교회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마음껏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그들을 집사로 세웠던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교회의 일꾼으로, 집사로 세웠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 남자였어요.
그러니까 직분을 위해서 특별히 여성을 지칭하는 명사는 따로 필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디아코너스 하면 존경받은 교회 일꾼이라는 뜻이 되었던 것인데
초대교회의 문화적 특성상 남자밖엔 없었던 거죠.
하지만 초대 교회는 뵈뵈라는 헌신적인 일꾼을 만나게 되었고 집사는 꼭 남자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비로소 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뵈뵈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최초로 여성 디아코노스, 집사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서 가운데 하나인 로마서를
로마 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집사 뵈뵈에게 맡깁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는 스타일이 매우 엄격했던 사람입니다.
교회 일을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어요.
성실하고 충성되지 않으면 교회일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제1차 바울의 선교여행 중에 힘들다고 집으로 도망쳐 버린 마가가 있습니다.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바나바는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자 했지만
사도 바울은 한사코 마가를 데려갈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이 때문에 동역자 바나바와 심각하게 다투게 되었는데도
바울은 그의 고집과 일할 때의 원칙을 꺾지 않죠.
교회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확신을 바울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격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전달하는 막중한 사명을
뵈뵈에게 맡겼다는 것은 그녀를 신뢰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첫째, 옷을 잘 입는다라고 쓰여있는 겁니다.
비싸고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서로를 향해 예의 바르고 정중한 모습을 갖추라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 존경받고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갑을 잘 열어야 합니다.
셋째, 입이 무거워야 합니다.
이러한 우아함을 나타내는 특징이 뵈뵈 집사에게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뵈뵈는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뵈뵈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후원자가 되기를 자원했고
지갑을 기꺼이 열어 섬기는 것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뵈뵈가 추천하는 사람을
로마서의 전달자로 보내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뵈뵈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전달하는 일을 스스로 감당하기로 자처합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위험하다고 몸 사리지 않고 많은 비용이 든다고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여자의 몸이지만 주님을 위한, 복음을 위한, 세계선교를 위한
그 일을 제가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간청하고 자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뵈뵈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 일을 감당한다면
많은 성도로부터 존경받는 일꾼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3. 뵈뵈는 사도로부터 인정받는 일꾼이었습니다.
(롬 16:1)
-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사도 바울이 아무에게나 '우리'라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후 8:23)
-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고린도후서 8장의 배경은
바울은 기근이 발생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서 구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그가 가장 신뢰하는 형제들을 고린도 교회에 보내면서
고린도후서 8장 23절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일꾼들 간의 서로 깊은 우정과 애정과 동료 의식, 한 가족이라는 의식이 묻어나는 것입니다.
뵈뵈 역시 바울에게 그런 자매인 것입니다.
많은 위로와 격려가 되어주는 일꾼입니다.
사도 바울이 애정을 담아 우리 자매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바울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스페인까지 가서, 주위에 복음을 증거 하는 일.
그 선교를 감당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로마 교회와의 협력은 꼭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에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고린도에서부터 로마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강도와 해적의 출몰로 인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이 소유한 많은 재산을 들여야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심하고 있을 때 뵈뵈가 찾아온 겁니다.
사도 바울의 고심을 알고 자신이 자원하여 그 일을 감당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얼마나 고마워했을까요.
뵈뵈의 헌신과 수고가 없었더라면 로마서는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뵈뵈의 이름은 빛나고 눈부신 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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