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과 보아스 ♥
하나님의 은혜로 절망의 바닥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룻기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떠났다가 다시 은혜를 받는 자리에 온 나오미와 이방 여인 룻.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된 룻기는 유대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성경입니다.
유대인들은 3대 절기 중에 칠칠절이 되면 모두 다 룻기를 읽습니다.
룻기는 4장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주 짧은 책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룻기를 매년 들으면서 거의 다 암송을 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룻기를 통해서
과거의 죄나 실패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다 하더라도
다시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믿게 되죠.
그래서 유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절망하지 않는 민족이 됩니다.
룻기는 66권의 성경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잘 표현한 은혜의 책입니다.
룻기에는 은혜라는 뜻을 가진 헤세드가 7번 나옵니다.
한글 성경에는 헤세드가 다양하게 번역이 되는데요.
은혜 : 7번, 선대 : 2번, 인애라는 단어로는 한 번 번역되어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룻기를 읽으시기 바랍니다.
룻기에는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룻기는 만들어낸 허구, 소설이 아니고 정말 일어난 사실, 역사적인 사실인 것입니다.
룻기는 BC1200년경 사사시대의 베들레헴에 큰 기근이 왔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흉년이나 기근이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채찍이자 경고의 의미입니다.
나오미가 살던 시대인 사사시대는 유대인들의 우상숭배가 심했고
예배는 점점 쇠퇴기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기근과 흉년이 오게된 것입니다.
기근과 흉년이 오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남편, 두 아들과 함께 이방 땅인 모압으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지도를 살펴보면
나오미는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까지 갑니다.
모압 땅과 베들레헴 사이에는 사해라는 바다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건너갈 수가 없고 베들레헴에서 위로 예루살렘 쪽으로 올라갔다가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서 요단강을 건너 또 밑으로 한참을 내려와 아르논이라는 국경을 넘어
드디어 모압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리가 약 100Km 정도 됩니다.
그러나 사사시대는 도로가 잘 닦여 있는 지금과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거리가 약 200Km 이상 될 것입니다.
걸어간다면 족히 2주는 걸릴 것입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라는 뜻이고 나오미는 즐거움이라는 뜻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이름으로 보아, 분명 믿음이 있는 가정인 것 같은데
그들은 믿음을 버리고 그모스라 하는 신을 섬기는 모압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오미 부부가 생존을 위해 믿음을 버리고 우상숭배의 땅으로 간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죠.
나오미는 모압 땅에 가서 정착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모압 땅은 기근이 없었고 먹을 것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압 땅에 온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하였을 겁니다.
하나님을 떠난 부유함은 그 자체가 저주입니다.
행복해 보이던 나오미의 인생에 갑작스러운 위기가 나타납니다.
평생 함께하며 기둥이 되어 주고 모든 것을 도와줄 것 같았던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방 땅에서 남편이 죽는다는 것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남편의 죽음을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써 하나님과 연결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남편이 죽은 뒤 두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죠.
나오미는 남편이 죽은 고통을 잊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행복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두 아들이 다 죽고 만 것입니다. 성경에는 왜 죽었는지 나오지 않아요.
아마 전염병으로 죽지 않았을까 추정합니다.
나오미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남편이 죽은 것도 슬픈 일인데 아들까지 죽고 말았습니다.
한 아들만 죽어도 슬픈데 두 아들이 다 죽었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나이도 많고 재산도 다 날렸습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도 재산을 많이 사용했을 것이고
두 아들이 죽었을 때 재산을 거의 다 써 버렸습니다.
먼 타국에서 혼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여자 중에 가장 슬픈 여자가 나오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룻 1:21)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나오미가 경제적으로 가난하게 된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저주하셨다고 생각한 것이죠.
나오미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나오미가 돌아왔다며 환영을 하자,
자신을 나오미라 부르지 말라 나오미는 즐겁다는 말이니 자신을 마라로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는 쓰다, 고통,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심각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이 나를 치셨다하며 그 자리에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망에 빠져 버리는데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죄가 우리를 노예로 묶어, 절망 속에 빠져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놀라운 인생을 살게 할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고난은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입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것이 나오미의 위대함이죠.
아무리 망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있습니다.
이제 나오미의 큰 며느리 룻을 한 번 생각해 보죠.
룻은 나오미의 가족을 만나 큰 아들 말론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룻은 평생 모압 지방에 살면서 그모스(chemosh)라는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집에 와서야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신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님 나오미의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 룻을 딸처럼 대하였지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죽자 인생이 밑바닥에 떨어집니다.
절망이었습니다.
룻은 10년 동안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남편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신으로 섬기고 모시기로 결심했습니다.
룻에게 나타난 절망은 오히려 하나님을 붙잡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아들이 죽자 자기의 옛 땅,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합니다.
나오미의 두 며느리인 룻과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따라나섰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의 국경인 아르논 강을 건너기 직전에
너희들의 땅인 모압 땅으로 돌아가라고 권면합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한다 말하며 축복합니다.
-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를 원하며
나오미는 아무리 큰 절망에 빠져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나오미의 말을 들은 오르바는 다시 모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룻은 계속 나오미를 따라오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룻에게 오르바를 따라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룻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룻 1:16)
-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도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이 나오미를 따라간 이유는 딱 한 가지, 시어머니의 하나님이 룻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때문에, 믿음 때문에 시어머니를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무엇을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 번의 결정이 룻의 미래를 완전히 바꾸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하나 하루하루 무엇을 선택할 때 그 선택을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르바는 모압 땅을 선택하여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베들레헴을 선택하여 믿음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오르바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상식에 따라 평범한 선택을 하였고
룻은 믿음에 따라 고난과 가난이 있는 믿음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은 좁은 길이며 외로운 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좋아 보이는 넓은 길로 가지 마시고
고통이 있고 좁고 외로운 믿음의 길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룻은 평범한 이방 여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주의 자리에서 은혜의 자리로 옮긴 것이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눈은 세상에서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아주 작고 초라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에게 머무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온 룻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까?
1. 룻은 좋은 만남의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는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 품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품 속에 들어간 사람, 그 사람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룻은 좋은 만남의 은혜를 받습니다
베들레헴에서 하나님께 올인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사사시대이므로 사사이거나 제사장이거나 유대인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방 여인 룻이 하나님께 올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룻은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하나님께 다 던졌습니다.
룻이 어떻게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되었을까요?
이방 여인인 룻이 어떻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위대한 여인이 되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 올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룻은 모압 땅에서 살았습니다. 모압 땅에는 부모님도 계시죠.
그러나 룻은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친척이나 친구 하나 없는 이스라엘 땅에
시어머니를 쫒아 갑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죠.
그냥 모압 땅에 남아서 재혼하면 돼요.
나이도 젊고 얼마든지 다시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가난한 시어머니를 따라
언어도 다르고 풍습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믿는 신도 다른,
이방인으로 손가락질을 받으며 베들레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롯이 하나님께 그녀의 인생을 다 올인했다는 뜻입니다.
베들레헴 사람들의 눈에는 룻이 가장 불쌍한 사람 같고 가장 천한 사람 같았지만
하나님 눈에는 유대 땅 전체에서 가장 큰 믿음을 가진 가진 자였습니다.
세상은 내가 가진 것으로, 사람들의 판단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대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올인한 자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올인하는 자에게 은혜와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인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올인하실 것입니다.
룻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과감하게 하나님께 올인한 것은 그녀의 인생에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알았지만 이제 하나님께 올인하여
하나님에 대해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을 그만두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룻은 이제 베들레헴에 들어와서 하룻밤을 자고 베들레헴에서 새로운 첫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룻은 베들레헴에서 아침을 시작하면서 은혜를 구하고 기대합니다.
(룻 2:2)
-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베들레헴의 첫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출발합니다.
나오미나 룻처럼 가난에 찌든, 도와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 절망의 자리에 있습니까?
신세 한탄하고 걱정하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손을 잡고 은혜를 기대하며 다시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룻은 가난하다고 신세 한탄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꽉 찬 하루를 시작합니다.
룻이 이삭을 주우러 갈 때 우연히 보아스 밭으로 가게 됩니다.
(룻 2:3)
-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베는 자를 따라는 보리를 베는 자라는 말입니다.
우연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크레입니다. 기회와 행운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에게는 우연이라는 게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이라는 단어를 쓰지만 믿는 자에는 모든 것이 다 기회입니다.
우리의 만남은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시는 것이죠.
(잠 16:9)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룻기에는 초자연적으로 홍해를 갈라지게 하거나 골리앗의 죽음과 같은 기적은 없지만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보아스를 만나는 은혜를 주십니다.
(룻 2:4)
-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서 이삭을 줍고 있는데
그때 마침 보아스가 밭으로 와서 룻을 만나게 됩니다.
룻이 보아스를 만나는 것을 룻의 입장에서 보면 우연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보아스의 이름은 복된 사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그 동네에서 유력자였습니다.
(룻 2:1)
유력한 자는 힘, 재산, 능력, 존경이 있는 용사라는 뜻입니다.
보아스가 하인들에게 하는 말을 보면 보아스는 참 인품이 좋죠.
밭의 주인이 보리를 베는 하인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보아스의 말하는 됨됨이로 보아, 정말 큰 논과 밭을 가진 유지일 뿐만 아니라
유력한 자, 존경받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보고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자기 밭에서 계속 이삭줍기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물도 맘껏 먹으라 말하였습니다.
물을 마음껏 먹는 것은 굉장히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물이 귀합니다.
베들레헴 성 입구에 우물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우물이 있죠.
그 우물의 물을 떠서 일하고 있는 밭으로 하인들이 물을 가져오는 거예요.
힘들여서 물을 갖다 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을 마음껏 마시라는 거예요. 큰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바짝 엎드려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니이까 하고 묻죠.
(룻 2:10)
-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행한 효성을 다 알고 있다고 말하고
또 네가 이방 여인인데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려 온 것도 안다고 하면서
너에게 온전한 상 주기를 원하다고 대답합니다.
(룻 2:12)
-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은 보아스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어머니 외에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방 땅에서
이렇게 친근한 위로의 말을 듣게 되니 큰 힘이 되었습니다.
룻은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룻 2:13)
- 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알고 은혜를 구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기에 인색한 분이 아니라 은혜 베푸시길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장소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룻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룻이 가지고 있는 조건 6가지가 나오는데
㉮ 룻은 하나님께 올인합니다.
㉯ 룻은 누구보다도 겸손합니다.
가장 낮은 자세로 자기는 하녀보다 더 낮은 사람이라 표현합니다.
㉰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그러니까 효성이 지극하다는 거죠.
룻은 밭에서 이삭을 주워 와서 시어머니를 철저히 돕습니다. 은혜를 베풉니다.
㉱ 룻은 은혜를 구합니다.
㉲ 룻은 시어머니의 말에 철저히 순종합니다.
시어머니가 말하는 것은 시키는 대로 다 합니다.
㉳ 룻은 어려움 속에서 최선을 다하며 삽니다.
보아스는 은혜를 구하는 룻에게 식사를 같이 하고 또 하인들을 시켜
룻이 이삭줍기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이삭은 하인들이 곡식을 수확한 후 떨어져 있는 부스러기를 말합니다.
보아스는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룻이 가는 길에는 이삭을 혹은 곡식을 한 움큼씩 뿌려 놓으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이삭줍기가 아닌 이삭담기입니다.
룻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은혜입니다.
룻은 집으로 돌아와서 나오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소상히 말해 드립니다.
룻의 말을 다 들은 나오미는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룻 2:20)
-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이르되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라도다 하고
-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나오미는 보아스라는 사람이 남편과 아들들이 살아 있었을 때도 늘 이렇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살아있는 며느리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자신도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하늘의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마 5:7)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이라는 것은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남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면 하나님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신다는 거예요.
(잠 11:25)
-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잠 13:15)
-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은혜를 베푸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사는 한 당신의 인생은 좋게 될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아스를 축복한 이후에
보아스가 자기 가문을 되살릴 수 있는 기업 무를 가자고 룻에게 말합니다.
(룻 2:20)
-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은 룻기 당시에 한 가정의 남편이 죽게 되면 재산이 다 없어지고 땅이 없어지죠.
그때 기업 무를 자가 대신해서 그 땅을 사 주고 또 집도 세워주고 가문을 회복시켜주게 됩니다.
기업 무를 자의 풍습이 있습니다.
기업 무를 자의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① 친척이어야 합니다.
②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③ 자원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업 무를 자가 누구입니까?
내가 망했을 때 우리 집안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절망 가운데 던져졌을 때
우리 집안을 살려줄 기업 무를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친척이십니다.
예수님은 저 멀리 계시는 신이 아닙니다
인간이 되어서 우리의 친척으로 오신 것입니다.
ⓑ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인간일지라도 그 사람은 우리 죄를 해결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 자체가 죄가 있기 때문에 그렇죠.
예수님은 인간이 되셨지만 죄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죄를 해결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어 주심은 예수님이 자원하신 것입니다.
(요 6:38)
-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자원해서 내려왔다는 거죠.
보아스는 나오미 집안의 기업 무를 자가 되어 룻과 결혼하게 됩니다.
룻이 보아스와 결혼을 함으로 룻은 자기가 평생 가질 것 같았던 가난.
절대로 해결할 수 없어 깊어져만 가는 가난.
가난의 두려움이 송두리째 해결됩니다.
당신에게도 보아스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만남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축복은 만남을 통해 옵니다.
그 어떤 축복보다도 만남의 축복이 평생 당신을 따라다니게 되길 바랍니다.
룻은 재산 하나 없이 가난한 시어머니와 함께
이삭줍기만 하는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니
순식간에 베들레헴에서 가장 존경받고 부유한 보아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뜨거운 뙤약볕에 가서 이삭을 줍던 초라한 삶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고난이 있습니까, 지금 절망의 자리에 있습니까?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모든 절망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는 전문가이십니다.
나에게는 왜 보아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냐 하며 낙심하는 분이 있죠.
당신이 보아스가 되시길 바랍니다.
2. 룻은 좋은 미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아무리 좋다 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 낡고 해지며 사라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는 결혼을 했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시시해지고 초라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좋아집니다.
나오미는 세상의 성공을 따라 모압 땅에 갔다가 텅 빈 자가 되어 돌아왔죠.
나오미 스스로도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로 부르라고 말했습니다.
나오미의 인생에는 더 이상 비전이나 열정이나 기쁨이 없었습니다.
텅 빈 공허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하나님의 품에 돌아오자 생각지도 못한 미래가 열렸습니다.
며느리인 룻이 보아스와 결혼하여 무너진 나오미의 가문이 살아났습니다.
또 룻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팔레스틴 땅의 뜨거운 뙤약볕에 이삭줍기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비참한 삶에서
베들레헴의 유력자와 결혼하여 갑자기 부유한 가문의 여주인이 되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미래가 달라졌습니다.
룻은 유대 땅에서 이방 여인이라는 꼬리표가 영원히 따라다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니
이방 여인이라는 꼬리표가 사라지고 현숙한 여인이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룻 3:11)
-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룻 3:11) 말을 누가 합니까?
보아스가 했죠.
현숙한 여인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에셰트 하일입니다.
에셰트는 여인이라는 말이고 하일은 재산, 힘, 능력, 존경이라는 말입니다.
하일이라는 단어를 여자에게 사용하면 현숙한으로 번역을 합니다.
보아스를 부를 때 유력한 자라고 한 것을 기억합니다.
이 유력한 자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기보르 하일입니다.
기보르는 용사이고 하일은 재산, 힘, 능력, 존경이라는 말이죠.
이게 참 재미있는 표현이에요.
이건 히브리어로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보아스는 기보르 하일.
룻은 아셰트 하일.
보아스가 존경과 능력과 재산이 많은 유력자인 용사라는 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보아스는 동네에서 큰 유지이고
재산도 많고 힘도 있고 존경도 받는 하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 하일이라는 이름을 갖는다는 게 좀 이상해요.
왜냐하면 룻은 이방 여인이고 가난하고 사람들이 조롱하며 멸시하는 여자입니다.
그럼에도 보아스는 룻을 하일이라고 불렀습니다.
당신은 유력한 자입니다. 당신은 힘 있는 자입니다. 당신은 돈이 많은 자입니다.
당신은 존경받는 자입니다라고 불러준 거예요.
남들이 볼 때 부족하고 연약하고 초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한 자로 힘 있는 자로 부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은혜입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아기를 낳게 되지요.
룻은 모압 땅에 있을 때 말론과 결혼했지만 아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보아스와 재혼 후 하나님께서 아기를 주셨어요.
(룻 4:13)
-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성경은 룻이 임신한 것을 굳이 하나님께서 임신하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의 축복은 아기를 낳은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룻기의 마지막 장의 2절의 말씀으로 마칩니다.
(룻 4:21-22)
-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하나님은 룻의 미래, 룻이 생각지도 못한 큰 은혜를 계획하시고 그것을 이루어 가십니다.
룻이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되는 거예요.
룻이 나중에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요.
룻의 미래는 점점 더 좋아집니다.
룻은 보아스와 결혼만 생각하였는데 하나님은 룻을 통해 다윗 왕가를 열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의 어머니가 누구입니까?
(마 1:5)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보아스의 어머니는 기생 라합입니다.
보아스는 동네에서 아주 돈이 많은 남자이고 존경을 받는 남자였는데
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요?
바로 자기 어머니가 기생 라합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기생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훌륭한 인품을 갖추고 돈이 있어도 나이가 많도록 결혼을 못한 것인지, 하지 않은 것인지.
그런데 룻을 만나면서 아주 순조롭게 결혼을 합니다. 순식간에 결혼합니다.
룻은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결혼할 때 보아스의 출생으로 인한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입니다.
보아스가 이방 여인, 모압 여자 룻과 결혼한 것은 보아스에게도 축복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기생 라합과 이방 여인 룻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은 아무리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도,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큰 은혜를 베푸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의 죄를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지금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의 품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은혜는 예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참 이상한 것은 하나님을 그렇게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는 좋은 만남의 축복이 있습니다.
매일 과분한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과분한 기회가 오길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좋은 만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는
한 번 좋은 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계속 좋은 미래가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미래가 열리길 축원합니다.
룻은 자기가 다윗 왕가의 할머니가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룻을 통해 다윗 왕가를 열 계획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명작으로 만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 너머의 놀라운 미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미래, 당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미래를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당신에게는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나 내가 행한 실수에 갇혀, 절망하며 주저앉아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가 내 한계야 이런 말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은혜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나는 뭐, 죄 지은 게 많아서
찔리는 게 많아서
은혜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은혜는 자격과 상관없이 그냥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는 흐르는 물처럼 낮아진 자에게 흘러 들어갑니다.
하나님, 제가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낮아지십시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에게 임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이기는 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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