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구세주로만 믿지 말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으십시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유명한 화가이며 조각가, 건축가이고 뛰어난 예술가입니다. 그는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사람으로 유명하지요. <최후의 만찬>은 4.6m X 8.8m의 굉장히 큰 그림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있죠. 성당은 조그마한데 성당 안, 전면을 차지할 만큼 큰 그림입니다.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는데 꼬박 4년이 걸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완성한 이후, 친구에게 보여주고 소감을 물었습니다.
그림을 본 친구는 예수님 오른손에 들려있는 잔이 너무 인상적이고 사실적이라며 감탄했습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붓을 들어 그 잔을 지워버렸습니다. 친구가 굉장히 당황해하며 "내가 말을 잘못한 건가?" 물었습니다. 그때 레오나르도가 유명한 말을 남기죠.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야 한다네."
우리 인생은 유한합니다. 끝이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세상에 내 이름을 남기길 원합니다.
남긴다 한들, 우리가 애써 노력하는 것들은 다 허상일 뿐입니다.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입니다.
진짜 남는 것은 오로지 주님과 함께 한 것뿐입니다.
세상에 전부를 걸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이 끝나는 날, 결국 허무함을 알게 될 뿐입니다.
예수 없는 삶은 넓은 길이고 결국 멸망의 길입니다.
당신의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은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과 함께한 것만이 영원히 남게 됩니다.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만약 예수님을 모른다면 우리 인생의 시작을 모르는 것입니다.
인생에 예수님보다 중요한 분은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2천 년 전에 살았던 역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구세주입니까?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좋은 답이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공생애를 마치시고 마지막 한 주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은 21장,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이 주일입니다.
그다음, 월요일 성전에 가셔서 성전에 있는 장사치들을 향해 채찍질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의 집을 강도의 굴로 만들었다며 그들을 쫓아내셨죠. 그래서 성전이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화요일 예수님이 성전에 가시는데요. 성전 가까이 가시다가 무화과나무에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합니다.
그리고 지금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께 네가 누구의 권세로 성전에서 가르치고, 채찍을 들고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가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데요. 요르단 강은 해저 400m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낮은 요단강 물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이 말씀으로 저는 큰 은혜를 받았어요. ㅎㅎ 이때 하늘에서 어떤 음성이 들려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너는 내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씀하시죠.
예수님께서 이 세례를 받고 그다음, 광야로 가서 40일을 금식하시죠.
그럴 때 사탄이 나타납니다. 뭐라고 유혹하냐면 40일을 금식했으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 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이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큰 풍랑을 만나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도를 향해 잠잠하라 말씀하십니다. 파도는 점점 잠잠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어요.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배에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백성들에게 알렸습니다. 순식간에 팔레스틴, 조그만 이스라엘 땅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쫘악 퍼집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어봐요. "베드로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오늘 예수님이 당신에게 나타나셔서 물어보십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나를 이 땅에 보내신 분시고 우주를 만드신 분이, 내 인생의 시작이 되는 그분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묻고 계십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이 있어야 돼요. 인생에 아주 중요한 대답입니다. 대답하지 못한다면 내 인생, 지금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정말 그렇게 느껴서 대답했다기보다는, 그렇게 믿어서 말했다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대답할 것을 알려 주셨다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었다면 도망갔겠습니까?
마태복음에도 기록된 얘기이며 마가복음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얘기로 시작합니다.
(막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기도하실 때 들짐승과 함께 계신다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숨겨놓은 얘기인데요. 살짝만 들춰보고 갈게요.ㅎㅎ 이사야서에 보면 독사의 굴에 손을 넣고 양과 사자와 같이 노는 날이 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것을 마가복음에 비춰보면요. 예수님이 40일 광야에 계실 때 들짐승이 기도하는 예수님 옆에 있다면 체온을 나눌 수 있기에 춥지 않으셨겠지요.
이것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회복시키시며 다시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주셨던 특권을 회복하게 하신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스쳐 지나가도록 해요.
(눅 1: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의 간청으로 그 집을 방문하게 됩니다. 나사로가 죽고 나흘이 지나갔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예수님을 보고 고백을 합니다. 어떻게요?
(요 11:27) 이르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말씀은 죽은 나사로가 무덤에서 살아난 때가 아닙니다. 살아나기 전에 마르다가 예수님을 보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소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대부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이후,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꼬리표 하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시쳇말로 팔레스틴 땅에 청년 예수가 나타나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병든 자를 고치고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드롬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공생애의 3년 반 동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문은 계속 커지는데요. 팔레스틴 땅이 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때 쪼끄만 해요. 드디어 나사렛 동네의 청년 예수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하니 온 성이 떠들썩하게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백성들이 환호합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하나님의 아들로 부르짖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환호성을 가만히 듣고 있을 수만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합니다. 죄목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쓰기 때문에 신성모독으로 정합니다.
이들은 트집을 잡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합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은 다 대답을 하시지요.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바리새인들을 향해 질문을 합니다.
(마 22:41-42)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성전과 예수님 주위에 군중이 운집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질문할 때 예수님이 대답하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대답이 다윗의 자손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이거든요.
그리스도와 메시아를 헷갈리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헬라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입니다. 똑같은 말이에요.ㅎㅎ그리스도 = 메시아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성경 학자로 알려진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쉽게 다윗의 자손이라 대답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는 건 익히 잘 아는 얘기입니다. 성경 곳곳에 나와 있거든요.
그리스도의 뜻은 무엇일까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구약에서는 누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까?
선지가, 제사장, 왕이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구약에서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삼하 7:12)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네 몸은 다윗을, 네 씨는 메시아를 얘기합니다.
(사 11:1-2)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에서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를 뜻합니다.
(렘 23: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시 89:3-4)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 (셀라)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메시아가 다윗의 가문에서 태어날 것을 쉽게 대답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또 다른 질문을 하십니다.
(마 22:43-44)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주께서 내 주께'는 서로 다른 주입니다. 앞에 주는 하나님이시고 뒤에 주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에 더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시편 110편 1절 말씀을 옮긴 것입니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짓밟을 때까지 메시아를 권능의 자리에 있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시편을 완전히 꿰뚫고 있는 것을 보고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질문하십니다.
(마 22: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인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이냐에 그들의 대답은 다윗의 자손이라 쉽게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러면 왜 다윗이 그리스도를 보고 주라고 했느냐 물으십니다.
당신은 자기 손주를 보고 "주여." 할 수 있습니까? 상식에 맞지 않은 얘기잖아요.
"그대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다윗 왕이 어찌 그리스도를 향해 주라고 고백을 했느냐." 이 질문을 하고 계신 겁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마 22: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지금 이런 논쟁을 하고 있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성전이에요.
이 성전은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겐 중요한 장소입니다. 안식처죠. 아지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곳에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이 마가복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 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오늘 메시지를 통해 두 가지를 나누길 원합니다.
① 예수님을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귀신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했잖아요.
기적이 일어날 때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들이라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힘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조금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예수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외쳤죠.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이 저주의 자리인 나무에 달려 죽자,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칼로 찔러 죽이지 않고 나무 위,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했을까요?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저주받은 거예요.
결정적으로 백성들이 온 성에 떠들썩하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환호를 하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무에 매달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죽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에 달릴 수 있을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모든 소문을 한꺼번에 없애기 위해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여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그리스도라 부르고 호산나라 부르며 메시아라 외쳤던 그 무리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뭐라고 조롱합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조금 전에 그리스도라 부르고 호산나라 부르며 메시아라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조롱해요. 무엇이라 조롱합니까?
(마 27:40)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조금 전까지만 해도 큰 소리로 호산나를 외쳤잖아요. 메시아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내려오라고 조롱해요. 하긴 제자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지만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자 도망가 버렸잖아요.
그렇다면 제자들은 언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됩니까?
(롬 1:2-4)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을 이론적으로만 하나님의 아들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약 속에 갇힌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생각지 마십시오.
그분은 부활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내 삶에 간섭하시고 오늘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 살아계십니다.
(히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2천 년 전에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지금도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말씀을 읽는 중에도 예수님은 당신의 병을 치유하십니다.
2천 년 전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2천 년 전에 풍랑을 잠잠케 하신 예수님은 오늘도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풍랑을 잠잠케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 예수님을 그리스도에서 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내 죄를 해결해 주신 구세주로, 그리스도로, 메시아로 다 믿으시죠? 그만큼의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이번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다 마치시고 마지막 한 주를 보내시는데 주일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고 월요일에 성전을 청소하셨고, 화요일에는 성전에 오시다가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하시고 지금 바리새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시잖아요.
그리고 목요일-금요일에 체포되셔서 돌아가시잖아요. 죽음을 이틀 앞두고 바리새인들과 중요한 메시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메시지에 대해 토론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왕이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했으니 너희들도 메시아인 나를 주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을 이틀 앞두신 예수님의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좀 전에 백성들은 호산나, 호산나라며 온 성이 요동하도록 예수님을 그리스도라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로마의 정치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키는, 정치적 자유를 주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 자신을 메시아를 넘어서 주로, 주인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듣고 있던 유대인인 바리새인들은 아무도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침묵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 백성들도 즐겁게 듣기만 했지 예수님을 주로 모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신 메시아로만 믿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메시아로 믿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해도 주인으로 모시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살고 있지요.
내가 주인이 되는 삶과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삶의 선택은 완전히 다른 인생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만큼 위대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왕으로 들어오셔서 우리를 통해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십니다.
한 번뿐인 짧은 인생을 내가 주인이 되어 아등바등 살지 마시고 만왕의 왕이신 그분께 나를 다 내어드려 그분이 내 안에서 사시게 되길 바랍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로,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교인들처럼 예수님을 메시아로만,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메시아로만 믿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후,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기 위해 막 몰려듭니다.
그때 베드로가 무슨 설교를 하였나요?
오늘 읽었던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이틀 전, 화요일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시다가 예수를 주로 믿으라는 메시지를 설교하고 있습니다.
(행 2:34-36)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로 믿어야 되고, 메시아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모여든 그들에게 예수님은 주가 되어야 한다. 임금이 되어야 한다. 왕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에 들어가서 설교했기 때문에 체포되어 대제사장 앞에 끌려갑니다. 대제사장 앞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임금이시다, 왕이시다 설교를 하는 거예요.
(행 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바울은 많은 서신서를 씁니다. 로마서부터 13권을 쓰는데, 서신서에는 예수님을 소개할 때 언제나 주로 기록합니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갈 1:3)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엡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빌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딤전 1:1)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언제나 예수님을 소개할 때 우리 주 예수로, 초대 교회 교인들에게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며 주 예수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바울만 그랬을까요?
(약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벧전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초대 교인들은요 예수님을 우리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천국가게 해 주시는 메시아로만 믿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딱! 여기까지만 믿고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예수님이 내 안에 영접되어야 진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당신 안에 예수님께서 들어가 있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 안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당신은 예수님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는다는 지식적인 앎은 아무 힘이 없다니까요.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메시아가 맞습니다.
분명, 움직일 수 없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만 믿지 마시고, 그분을 당신의 왕으로, 주님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갈 때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마시고, 매 순간순간 예수님이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그분이 나를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분이 내 운명을 주장하시고 날마다 내 삶을 주장하게 하십시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님을 먼저 주님으로 모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 구세주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시면 내 초라한 삶이 축제로 바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이 무엇입니까?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이 첫 번째 기적입니다.
첫 번째 기적을 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은 아주 상징적인 것이잖아요. 첫 번째 기적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죠.
의도를 가지고 첫 번째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잔칫날입니다. 잔칫집에 예수님이 가셨습니다. 손님으로 가신 겁니다.
손님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십니다.
근데 잔칫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잔칫집에 기쁨이 끝났다는 거예요. 파장한 잔치가, 끝난 잔치가, 썰렁한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잔치는 시간이 흐르면 파장한 잔치가 됩니다.
결혼을 허니문이라 하잖아요. 한 달만 꿀이 흘러요. 어떤 사람은 1년까지도 좋다고 하는 징그러운 사람도 있지만 ㅎㅎ 곧 끝날, 파장한 잔치가 된다니까요.
내 젊음도 파장한 잔치가 됩니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지나면 파장한 잔치가 돼요. 건강도, 돈도 파장한 잔치가 됩니다.
비전도, 열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쩍쩍 갈라지고 맙니다. 끝난 잔치가 됩니다.
말은 잔치라고 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잔치가 아닙니다.
고통이에요.
포도주가 다 떨어져 버린 혼인 잔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잔칫집에 예수님은 손님이잖아요.
근데 마리아가 와서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포도주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죠?
잔칫집의 주인을 찾아가야 되는 거예요.
이것이 손님으로 초대받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는 순간입니다. 주인으로 모시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십니다.
이전의 포도주보다 더 맛있는 포도주로 변하게 하십니다.
인생의 잔치가 파장한 잔치가 되는 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면 축제가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은 파장한 잔치가 되었다, 내 인생에 공허함이 왔다. 내 인생에 고난이 왔다. 내 인생에 어려움이 왔다. 이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빨리 깨달아야 돼요. 우리 인생, 내가 주인이 되면 당장은 잘 되는 것 같지만 곧 공허함이 오고 곧 죽음이 옵니다.
당신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십시오.
당신 삶의 중심에 돈을 놓으면 긴장과 두려움이 오게 됩니다.
당신 삶의 중심에 성공을 놓으면 긴장과 공허와 두려움이 오게 됩니다.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이 가득한 것이 모든 인간의 문제입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혼돈과 공허함과 흑암이 가득해요.
세계 최고의 갑부라도 인간의 마음 안에는 공허와 혼돈이 있고 어둠이 있습니다.
이 마음에 예수님이 들어오시면 혼돈이 질서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 마음에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공허함이 충만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 마음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면 흑암이 빛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혼자 힘으로 버거운 삶을 사시는 분이 계십니까?
삶이 공허하고 우울한 분, 계십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버리고 싶습니까?
질병으로 하루하루 사는 것이 힘드신 분이 있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에게는 왕이 계십니다.
그 왕은 평범한 왕이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사망조차도 이기신 전능하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당신을 최고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님께 당신 마음의 왕좌를 내어 드린다면, 예수님이 당신 인생에 행하시는 일들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축제가 될 것입니다.
글 하나를 읽어 보죠.
저는 바이올린입니다.
저에겐 아무런 소망이 없었어요. 어둠 속에 아주 오랫동안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누군가를 만났어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따스한 사랑의 손길이 저를 만지면서 얼룩지고 상처 난 저를 닦아주시고 흐트러진 저의 줄을 조율해 주셨습니다.
너무나 위대한 연주자였기에 저는 많이 부끄러웠답니다.
그분은 아주 열정적으로 저를 연주하셨습니다.
제게서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 줄은 저도 전혀 몰랐어요.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제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있었어요.
저는 단지 그분의 손에 맡겨지기만 했죠.
그런데 더 감동적인 것은 그분이 저를 친구라 부르신다는 겁니다.
오직 그분으로 인해 변화된 저의 삶, 이제는 제 안에 진정한 소망과 존귀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를 친구라 부르시며 지금도 연주를 멈추지 않는 분,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
아무 가치 없던 저를 들어 조율하시고 아름답게 연주하시는 그분께 내 삶의 왕좌를 드립니다.
그분은 당신의 삶도 연주하시길 원하십니다.
아직도 나 자신을 왕으로 삼고 내일을 기대하는 분이 있습니까?
허무함 뿐입니다.
내가 왕이 되면 두려움뿐입니다.
내가 왕이 되면 가는 장소가 다 지옥이 될 뿐입니다.
나를 기대하지 마시고 지금도 나를 다스리길 원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왕이라면 내 삶 전체가 축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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