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란 무엇인가?
C.S. 루이스는 기독교만 가진 특성이 은혜라고 얘기했죠.
은혜는 히브리어로 헨과 헤세드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왕이 마차를 타고 가다가 거지를 만났을 때,
마차에서 내려 거지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그에게 많은 선물을 주는 것을 헨, 은혜라고 합니다.
또, 그 사람의 행동과 상관없이 그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불변의 사랑으로 선물을 주는 것을 헤세드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호의, 은혜, 인자로 번역이 됩니다. 이것도 은혜입니다.
헨이나 헤세드는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조건 베풀어 주는 선물, 사랑을 은혜라고 얘기합니다.
은혜에 한 가지를 더 붙인다면 그것은 공짜라는 거예요. 무료라는 거예요.
은혜를 베푼 자는 은혜를 받은 자에게 은혜를 갚으라고 말하지 않아요.
또 갚을 수도 없어요. 은혜가 너무 커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은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독교의 은혜는 공짜이고 거저 주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신의 노력, 수고에 대한 대가로 보상이 주어집니다.
모든 것은 성과 위주로써 업적 주의, 성공 주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생을 성과 위주로 산다면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피로와 공허뿐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에겐 또 다른 세상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세상입니다.
(민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다리 저는 자에게 베푼 은혜의 사건
오늘 은혜의 사건을 같이 한 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삼하 9:1-3)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
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다윗이 왕권을 잡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지 약 20년 정도 되어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그때, 다윗의 친구였던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 왕자를 기억하게 됩니다.
사울 왕은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이후,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였죠.
그때마다 요나단 왕자가 다윗을 보호해줍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나고 사울 왕과 요나단 왕자가 전사하게 됩니다.
이 소식이 온 이스라엘에 알려지자, 다윗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 왕의 가족들은 모두 도망을 갑니다.
원래 정권이 바뀌면 선임 왕의 가족들을 몰살시키는 것이 동서양을 불문한 관례입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돌보는 유모는 므비보셋을 데리고 도망을 가다가 아이를 떨어뜨리죠.
그래서 그 아이는 다리를 절게 됩니다.
성경은 그 아이의 이름을 므비보셋이라 하고 다섯 살이라고 기록합니다.
그 뒤 므비보셋은 몰락한 왕가의 손자로 숨어 살았습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러 므비보셋은 20대 후반이 됩니다. 결혼도 하고 아들도 하나 있었어요.
다윗은 문득 자신이 어려울 때 친구로서 늘 도와줬던 요나단과 한 약속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나단의 가족이 살아있다면 내가 은총을 베풀어야 되겠다고 말합니다.
이 은총이라는 단어가 헤세드입니다.
성경에는 은총, 인자, 호의로 기록되지만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총이라는, 헤세드라는 단어는 약속에 근거해서 사랑하는 겁니다.
다윗이 사울 왕가의 자녀에게 은혜를 베풀겠다는 것은 정치적 쇼가 아닙니다.
정말 마음 깊은 곳에서 요나단의 자녀들에게 은총을 베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거죠.
그래서 신하들에게 다윗 왕가의 왕족 중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사울 왕가의 땅을 관리하는 시바라는 종이 와서 요나단에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다리를 저는 자라고 비꼬아 말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사무엘하 9장을 보고 있는데 사무엘하 5장을 보면 다윗이 예루살렘 성을 쳐들어갈 때, 예루살렘 성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언덕에 위치해 있었죠.
그래서 예루살렘에 원래 살았던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이 공격해 온다고 했을 때 비웃었어요.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아무리 군대가 몰려와도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다윗의 군대를 우습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높은 곳에 위치한 난공불락과 같은 예루살렘 성에 쳐들어오는 것은 축구로 비유하자면, 자책골과 같은 것이 거든요.
정말로 다윗이 쳐들어 왔을 때, 다리 저는 사람들을 앞세워서 다윗을 쫓아버리려고 했어요.
다윗은 높은 언덕을 공격하면서 다리 저는 사람, 맹인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이렇듯 다리 저는 자라는 말은 곧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말로 통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바라는 사람이 요나단의 후손을 다리저는 자라고 비꼬아 말한 것은 왕이 은혜를 베풀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지요.
다윗 왕은 요나단의 아들이 다리를 전다는 말에는 개의치 않고 그가 어느 있느뇨, 그를 데리고 오라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받을 조건이 되지 않는데 베푸는 것입니다.
(삼하 9:4-5) 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요나단의 아들이 살고 있는 곳은 로드발입니다.
로드발은 황무지라는 뜻입니다.
즉,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불모지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겁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에게는 요나단의 아들이 다리를 절거나 가난하거나 실패했거나 상관이 없습니다.
다윗은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 데려오라 했습니다.
다윗에게는 그 사람의 형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친구인 요나단과의 약속이 중요한 거예요.
(삼상 10: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요나단이 다윗에게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린 신 때에도 다윗, 너는 너의 인자함을
나, 요나단의 집에서 영원히 끊어 버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겁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죠.
그 약속 때문에 요나단의 아들을 데려 오라고 하는 거예요.
(시 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많으시고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삼하 9:6)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나단의 아들은 다윗 왕 앞에 엎드려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자기는 종이라고 말합니다.
종은 히브리어로 에베드입니다. 다윗 당시에 가장 천한 자, 노예라는 뜻입니다.
(삼하 9:7-8)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은 다윗 왕 앞에 엎드려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종이라 말했고 이제는 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를 굉장히 멸시합니다.
또, 그냥 개가 아니라 죽은 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부정한 자라 칭하며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은 죽은 개와 같은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겠다는 말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혜 2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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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9장을 통해 본 은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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